이제 일한 지 꽤 되어가다 보니 나도 참 느긋해졌다.
예전 같으면 바로 해결하려던 일도, 요즘은 그냥 "언젠가 되겠지" 하고 넘기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재택근무 중인 오렐리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오렐리! 잘 지내? 계획할 게 있어서 잠깐 시간 돼?"
"안녕, 소영! 그런데 지금 회사 폴더 접속이 안 돼서 IT부서랑 통화 중이야."
"그래, 다 되면 나한테 알려줘."
그런데 20분쯤 지났을까. 오렐리가 노트북을 들고 직접 사무실에 나타났다.
"엥? 어떻게 온 거야? 재택근무날이잖아?"
"IT부서랑 해도 해결이 안 돼서... 직접 와서 해볼까 해서."
"퇴근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그거 때문에 왔어?"
"난 일단 해결해야 마음이 편해."
그녀의 노트북 화면엔 익숙한 오류 메시지가 떠 있었다.
폴더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이틀 전부터 저 메시지를 보고 있었지.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접속 안 되더라. 벌써 이틀 됐나?"
"뭐라고? 왜 IT에 연락 안 했어?"
"어... 그냥 귀찮아서."
"그럼 일은 어떻게 해?"
"이메일로 하지 뭐. 폴더는 언젠가 되겠지 싶어서..."
"너도 IT부서에 연락해야지!"
"으... 알겠어. 😐"
그렇지만 나는 결국 미루고 또 미뤘다.
한편, 오렐리는 포기하지 않고 한 시간 넘게 IT부서와 통화했다.
마침내 전화를 끊고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해결했어?"
"아니, 안 된대."
"어휴, 고생했네."
"나도 너처럼 그냥 기다릴걸.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
캐나다 공무원의 하루가 이런가 보다.
그때 복도 끝 중독센터 클리닉에서 누군가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는 사무실까지 울려 퍼졌다.
"저 사람 왜 우는 거야?"
"저기 중독환자 클리닉이 있거든. 대기실에서 우는 건 일상이지."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자, 결국 옆 사무실의 로비안이 밖으로 나가 상황을 살폈다.
"저 사람, 오줌이 안 나와서 운대."
"진짜...?!"
순간 우리 셋은 마주 보고 웃어버렸다.
환자에게는 심각한 상황인데, 웃으면 안 되는 거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별일 아닌 듯, 특별한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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