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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손톱 밑 가시와 자비 명상

by 밀리멜리 2023. 2. 21.

얼마 전, 안 쓰는 서류를 버리려다가 손가락을 살짝 다쳤다. 종이에 박힌 스테이플심을 그냥 손톱으로 빼내려다가 심이 손톱 안으로 파고들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별로 안아프길래 가만 내버려두었더니 주말 동안 좀 더 아파져 온다. 상처 주위로 살짝 열이 나고 손가락이 웅웅 하는 느낌이 드는 게, 끝내 고름이 생겼다. 에잇, 귀찮아.

늦게서야 빨간약을 면봉에 묻혀서 손톱 사이로 흘려 소독을 했다. 그러니 상처가 더 커지지는 않는 느낌이다. 별로 큰 상처가 아닌데 계속 따끔하니 신경이 쓰인다. 진작 소독했으면 괜찮았을 걸.

손톱 밑이 신경쓰이니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누구나 제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플 수 있어. 근데 심장이 뜯겨나가 본 사람 앞에서 아프단 소리는 말아야지. 그건 부끄러움의 문제거든."

 


드라마를 안 봐서 이 대사가 어떤 장면에서 나온건지 궁금해진다. 정주행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대사를 쓰다니...

난 부끄럽지만 아무래도 손톱 밑 가시 이야기를 계속 해야겠다.

지난 주말은 집에서 푹 쉬면서 계속 명상을 했다. 요즘은 자비 명상(Compassion meditation)을 주로 하고 있는데, 오늘째로 30일 챌린지를 끝냈다. 다시 30일을 한 번 더 해볼 생각이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오래는 못하고, 5분 명상, 10분 명상을 주로 한다. 자꾸 딴짓을 하고, 눈을 뜨고, 손가락 아픈 곳 한번 보고, 간지러워서 긁적이고. 그래도 눈을 감고 있다가 순간 어떤 말이 확 떠올랐다.

'나는 고통이 그곳에 있음을 안다.'

알아야겠구나! 고통이 어디에 있는지. 

가만히 신경쓰이는 부위에 집중해 보았다. 아픈 게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계속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곧 다른 잡생각과 함께 아픈 건 흘러 내려갔다. 어느새 잊어버리게 되었다.

고통은 내 몸이 아픈 걸 알아달라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남이야 그걸 못 알아주더라도 나만큼이라도 내 몸의 신호를 알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만성적으로 아토피를 앓아서, 간지러워서 긁는 건 매번 무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손톱 밑 가시를 넘어서, 내가 항상 경험하는 가려움 신호에 집중해 보았다.

이제는 손톱 밑 가시가 귀찮고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 이 상처가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뭐 대단한 걸 깨달은 건 아니고...

1. 스테이플심을 뽑을 땐 도구를 사용한다.
2. 허둥대지 않는다.
3. 상처가 나면 미루지 말고 소독한다.
4. 아픈 걸 무시하고 방치하지 않는다.
5. 간지러울 때마다 내 몸이 뭔가 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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