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이가 친구 결혼식 때 입을 양복을 사러 갔다. 우리 둘 다 쇼핑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이런 일이 있으면 좀 미루는 편이다. 그치만 이번엔 한국에서 열리는 절친의 결혼식에다가, 사회까지 맡아서 멋진 옷을 입고 싶은 모양이다.
"양복 사러 가야 하는 데 언제 가지? 다음주에는 꼭 가야겠다."
"그러지 말고 그냥 일요일인데 오늘 가자."
먼저 백화점부터 들렀다.
매장 3~4군데를 둘러보고...
"맞춤으로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매장에서 사는 게 좋을까?"
내가 알 리가 없다... 찬이 친구들 의견도 반반으로 갈렸다.
쇼핑몰의 매장 3군데를 더 돌고, 나는 그냥 지쳐버렸다. 찬이 혼자서 보고 오라고 하고, 나는 그냥 사탕가게 앞에 앉아서 쉬었다.
가게를 돌아볼 때마다,
"이거 어때?"
하고 묻는데, 나는 그냥 다 양복 똑같아 보인다. 이런, 도움이 못 되는구만!
마지막으로 무어스라는 매장에 들렀는데, 찬이도 점원도 다 나에게 이 양복이 어떤지 묻는다.
"괜찮은데..."
나는 다 비슷해 보여서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치수를 재 주던 점원도 내가 시큰둥한걸 보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봐요, 당신이 왕이에요. 당신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구요."
그 말에 하하하 웃어버렸다. 양복점 언니 말을 너무 잘하시네...
"사실 지금 좀 지쳤거든요. 이전에 여러 매장을 둘러보고 와서."
"걱정 마요. 빨리 끝낼 수 있어요."
찬이는 이곳의 양복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원단이 잘 늘어나서 팔 부분이 편하고, 라인도 슬림해서 좋다고 한다. 점원이 찬이에게 물었다.
"구두는 지금 신은 걸로 할 거죠?"
"네, 그래요."
"양말과 벨트는 안 필요해요? 색을 맞춰야 할 텐데."
"색이요? 그냥 아무거나 입으면 안되나요?"
"이런, 이런... 수트 입을 때는 규칙이 있어요! 양말은 바지와 똑같은 색, 벨트는 신발과 똑같은 색을 입어야 해요."
"그런 규칙이 있어요?"
"기본이죠!"
"잠깐, 잠깐... 양말은 바지와 같은 색, 벨트는 신발과 같은 색 맞아요?"
"정확해요."
나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점원을 따라 이리저리 사다 보니 원래 예상했던 예산을 초과했다. 찬이는 생각보다 한번에 돈을 많이 쓰게 되어서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나도 좀 놀랐지만 찬이가 워낙 옷에 돈을 안 쓰는 편이라 그냥 별 생각이 없다.
"괜찮아? 이렇게 예산 초과해도?"
"뭐 어쩔 수 없지, 너 편하고 좋은 거 샀으면 됐잖아."
"그래도 이렇게까지일 줄은 몰랐어. 기분이 이상한데... 아무래도 친구랑 이야기해봐야 겠다. 너는 이 기분을 공감 못 해."
"음... 사실 무슨 기분인지는 알겠는데, 뭐 별 수 있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야. 너 수트핏 잘 받으니까, 친구 결혼식 때 잘 입어 봐."
"칭찬은 고마운데... 내가 이렇게 옷에 돈을 쓰다니! 나 같지가 않아."
"하하하, 그럼 이번 기회에 한번 익숙해져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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