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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친이 해준 요리

by 밀리멜리 202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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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날, 한국에서 친구가 몬트리올로 놀러 오기로 했다.

 

한국에서 영어강사 할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가끔 연락이 두절되어서 걱정을 하게 만드는 '돈'이라는 이름의 친구다. 이번에도 몬트리올에 오기로 해놓고 한 달 넘게 연락이 없어서 안 오는 줄 알았다! 

 

그래도 다행히 비행기타기 이틀 전 연락이 되어 계획을 짰다. 공항도 마중나가고, 몬트리올의 맛집이란 맛집은 다 소개시켜줄 작정이었다. 퀘벡시티도 가고!

 

비행기가 뜰 때쯤 연락이 왔다. 🛫 영상통화를 했더니 공항에 있는 친구 모습이 보였다.

 

"안녕! 와, 너 지금 공항이네? 진짜 오는구나!"

"아, 그게 말이지. 일단 내 말 들어봐. 내 티켓이 환불되었대."

"환불됐어?"

"응. 비행기 시간이 변경되어서, 환불이 됐대."

"아니, 그런 게 어딨어?! 넌 몰랐어?"

"항공사에서 나한테 연락을 많이 했는데, 내가 그동안 핸드폰을 안 보고 살았잖아... 그래서 몰랐어."

"그래서 이륙 직전 지금에야 알게 된 거구?"

"응..."

"티켓이 아예 없어?"

"지금 구하려면 좀 힘들겠지..."

"오... 멍해지네."

"나도, 나도. 일단 잠깐 앉아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봐야겠어..."

 

결국 친구는 짐을 끌고 공항에 멍하니 한 시간정도 있다가 다시 집으로 향했다.  

 

"찬아, 돈이 못 온대.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진짜 이 자식 하는 짓 때문에 내가 속이 터진다! 화가 나!"

"어쩐지 온다는 게 실감이 안 나더라..."

 

음... 비행기 티켓은 잘 확인해야 해...

 

우리는 몬트리올 맛집 탐방은 미뤄두고 그냥 집에서 먹기로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어떻게든 크리스마스를 즐겨야 하지 않아? 찬이가 솜씨를 발휘해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만들어 주었다. 찬이의 요리실력은 나날이 늘어서, 파스타가 진짜 고급지고 맛있다.

 

 

"자, 알리오올리오만 하기 뭐해서 훈제 연어도 옆에 올려봤어."

"우와, 고마워! 진짜 맛있다!"

 

찬이가 나보다 매운 것을 잘 먹어서 그런지, 알리오올리오는 조금 매운 편이다. 그런데 훈제 연어랑 함께 먹으니 중화가 되어 좋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에는 매쉬 포테이토랑 칠면조를 먹어야지."

"칠면조? 그냥 치킨 먹으면 안돼? 우리 이전에 칠면조 샀다가 너무 많아서 못 먹었잖아."

"아, 그래도 난 먹고 싶어. 크리스마스니까 먹고 싶은 거 먹을래. 재료 사올게!"

"나야 좋지!"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런지, 마트가 텅텅 비었다. 칠면조는 커녕 닭고기도 다 동이 났다. 명절이 되기 전에 일찍 갔어야 하는데!

 

"아, 마트에 칠면조 없어! 치킨도 없고! 그래서 결국 사온 게 돼지고기야."

"난 돼지고기도 좋은데."

"난 칠면조 먹고 싶었단 말야! 크리스마스 지나고라서도 먹을 거야. 그래도 내가 매쉬드 포테이토는 해줄게."

"오..."

 

찬이는 부엌에서 뚝딱뚝딱 팔이 빠져라 삶은 감자를 뭉개더니, 결국에 부드러운 매쉬드 포태이토를 만들어 냈다.

 

"이거, 진짜 좋은 버터만 쓴 거야. 그리고 엄청 부드럽지? 솔직히 내가 이제까지 만든 것 중에서 제일 맛있다."

"오...! 진짜 맛있다!"

"근데, 매쉬드 포테이토는 한국말로 뭐라고 해?"

"어, 그것도 몰라? 감자 뭉개미!"

"감자 뭉개미? 오... 그런 말이 있구나."

"여기처럼 막 버터를 넣진 않지만...ㅋㅋㅋ"

"그런데 난 왜 그 말을 한번도 못 들어봤지?"

"왜냐하면 뻥이니까! 내가 만들어낸 말이야."

"아.... 속았다! 오랜만에 속았네, 아 참."

 

찬이는 캐나다에서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쓴다. 요즘 한국어가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어려워하고 모르는 말이 있다. 나는 가끔 그걸로 놀리는데... '감자 뭉개미'라고 즉석에서 지어낸 말에 속다니!! 그럴듯 했나? 😆😆 

 

"이제 돼지고기도 다 굽고 감자도 다 됐다. 너 밥 먹을래? 난 매쉬드 포테이토만 먹어도 되는데."

"응, 난 밥 먹을래. 그리고 김치도 필요해... 어쩔 수 없이 난 한국인이야. 난 버터가 많이 들어간 건 잘 못먹어서..."

"아 맞다, 그렇지? 밥이랑 김치 올려줄게."

 

그런데 매쉬드 포테이토랑 김치의 조화가 엄청나게 좋았다. 원래 버터가 많이 든 건 느끼해서 많이 못 먹는데, 김치 한 입 먹고 나니 입맛이 또 싹 돌면서 매쉬드 포테이토가 땡긴다. 결국에 다 못 먹을 줄 알았는데, 김치 덕분에 감자를 다 비웠다.

 

"후아... 배불러!"

"매쉬드 포테이토랑 김치를 같이 먹다니, 진짜 여기서는 상상도 못한 조합인데... 맛있긴 맛있다."

"그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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