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과학책 기후변화를 공부하고 있다. 과목 이름이 아예 기후변화이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 물리, 화학, 생물 이렇게 따로 배웠는데 여기서는 기후변화를 하나 주제로 잡고 관련된 분야를 다같이 배우는 편이다.
중간과제가 실험보고서를 쓰는 거였다. 중간에 한번 선생님께 검사를 맡아야 해서 제출했는데, 나머지 다른 숙제는 리서치 과제였다. 열심히 인터넷 찾아가며 5시간 정도 들여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이 숙제는 옛날 파일입니다. 숙제 파일에 오류가 있었네요. 새 파일을 올려놓았으니 확인하세요."
잉?
황당했다. 숙제 파일이 잘못된 거라니...!
새로운 숙제 파일은 아예 다른 문제였다. 그럼 내가 하던 숙제는? 말짱 도루묵이다.
다섯 시간 넘게 들여서 작성하고 있었는데, 다시 하라니.
갑자기 화가 막 났다.
어휴, 이런 걸 하느라 다섯 시간이나 들었는데. 그런데 이게 숙제가 아니라니.
한숨을 푹-- 쉬니, 찬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내가 짜증을 낼 때면 찬이는 좀 긴장한다.
"왜 그래?"
"아니, 지금까지 숙제 열심히 해서 냈는데, 선생님이 숙제 파일 잘못됐다고 다시 하래! 새로운 거 아예 다시 하래. 속상해."
"선생님이 잘못 올린 거야?"
"그런 것 같아. 나는 제대로 다운받았으니까."
"그럼 선생님한테 다시 어떻게든 해달라고 해봐."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할 만한 게 없어. 그냥 다시 해야 해. 어차피 과제 기한도 없는 거라서..."
"에휴, 진짜 속상하겠다. 숙제를 중간에 바꾸면 그건 좀 아니지..."
찬이는 내가 속상한 일이 있어서 위로해 줄 때, 항상 이런저런 해결법을 먼저 제시한다. 나는 그냥 내가 짜증났다는 걸 알아주면 풀리는 편이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더니, 찬이가 그대로 위로를 잘 해준다.
짜증은 좀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새로 숙제를 시작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항의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5시간 넘게 공을 들여서 실망했지만 그래도 숙제는 새로 제출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퀘벡에서 살면서 배운 것은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은 그냥 해보는 거다. 나는 보통 이런 상황이 오면 혼자 속으로 짜증내면서 겉으로는 티를 안 내는 편인데... 혼자 화를 내 봐야 내 마음만 복잡해진다. 아무튼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마음은 좀 가라앉았다.
선생님이 주말이 지나고 답장을 보냈다. "속상한 마음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 숙제를 한 게 아예 헛고생은 아닐 거다. 그리고 새로운 숙제가 시험 보는 데 더 도움이 될 거다. 미안하다."
맞는 말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고 답장을 보냈다. 역시 또 '속상한 마음을 이해한다'라는 말에 마음이 사르르 풀린다.
그냥 이렇게 해프닝은 끝났다.
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속상한 마음을 금방 가라앉혔다는 걸 발견했다.
이런 일로 주말을 망치지는 말아야지. 주말에는 집에서 펑펑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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