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컬쳐리뷰/음악 리뷰

블랙핑크(Blackpink), '불장난'에서 보이는 나쁜남자 신드롬

by 밀리멜리 2020. 11. 25.

반응형

2016년에 나온 블랙핑크의 불장난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잡다한 생각이 나서 정리해 보고 싶다.

 

 불이 가지는 속성

 

불은 강력하고 위험하면서도 아름답다. 불이 산화하면서 내는 아름다운 빛과 열에 사람들은 매료된다. 그래서 불은 열정이나 희생, 위험, 치명적인 것을 상징한다. 불나방은 자기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에 달려들고, 그래서 우리는 파국으로 치달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사랑을 불장난에 비유한다.

 

 

모닥불을 상상해 보자. 곁에 있기만 해도 포근하고 따뜻하다. 불씨를 날리며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그 빛을 바라보게 된다. 그 매혹적으로 휘날리는 불티와 따스함에 이끌리지만, 그 불에 가까이 갈수록 위험하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뮤비에서 보이는 나쁜 남자 신드롬

 

 

우리 엄만 매일 내게 말했어
언제나 남자 조심하라고
사랑은 마치 불장난 같아서 다치니까


엄마 말이 꼭 맞을지도 몰라
널 보면 내 맘이 뜨겁게 달아올라
두려움보단 널 향한 끌림이 더 크니까

 

멈출 수 없는 이 떨림은 on and on and on
내 전부를 너란 세상에 다 던지고 싶어

 

나쁜 남자인가?

제니가 바이크의 뒷자석에 타는데, 운전하는 남자가 순딩순딩하리라고 상상하기는 조금 힘들다. 가죽잠바를 입고 바이크를 운전하는 모습은 하도 자주 쓰인 나쁜 남자의 클리셰 이미지여서 이제는 촌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헬멧도 자기만 쓰고 제니는 헬멧도 없다. 이거 정말 나쁜 남자 맞잖아?! 가사에서 보듯이 엄마가 보고 조심하라고 할 만한 남자인 걸 알면서도 이 사람에게 끌림을 느낀다. '내 전부를 네 세상에 던지고 싶어'라니, 마치 죽을 걸 알면서도 불빛에 뛰어드는 불나방같다.  

 

 

Oh no 난 이미 멀리 와버렸는걸
어느새 이 모든 게 장난이 아닌 걸
사랑이란 빨간 불씨
불어라 바람 더 커져가는 불길
이게 약인지 독인지 우리 엄마도 몰라
내 맘 도둑인데 왜 경찰도 몰라

 

 

걷잡을 수 없는 불길

 

위험한 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은 것 같다. 작은 불씨같은 약한 호감으로 시작된 사랑은 활활 타들어가고, 그에게 키스해야 할지, 그를 거부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그립기는 하다. 그는 나쁜 남자이니, 연락 따위를 제대로 할 리도 없으니 속이 타들어가는 건 여자이다. 마음을 훔쳐간 도둑이자 상처를 주는 나쁜 사람인데, 왜 아무도 그걸 몰랐는가?

 

전화를 기다려보지만 오지 않는다.

 

불 붙은 내 심장에 더 부어라 너란 기름
Kiss him will I diss him
I don't know but I miss him
중독을 넘어선 이 사랑은 crack
내 심장의 색깔은 black

 

 

YG 노래 아니랄까 봐, 중독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Crack은 금이 가서 깨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마약을 뜻하기도 한다. 사랑이든 마약이든, 중독의 끝은 치명적이다. 결국 모두 산화되어, 검게 타버린 심장만이 남았다.

 

Crack이라는 단어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그만큼 위험한 사랑인 줄 알면서도 덤벼든다는 것, 결국 깨져버릴 사랑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하면서, black과 라임이 맞아서 기발하기도 하다.

 

블랙핑크 노래들 중에서 특히 리사의 랩 라인은 다른 가사와 다르게 메시지가 더 강렬하고, 눈에 잘 띄면서도 라임이 대단하다. 키스 힘(kiss him) - 디스 힘(diss him) - 미스 힘(miss him) 을 반복적으로 연이어 사용한 것도 좋지만, 발음할 때는 키씀/디씀/미씀으로 발음되어서 바로 앞 한국어 가사의 '기름'과 라임이 맞는 것도 같다.

 

치명적인 사랑의 끝?

활활 타오르는 불이 사그라들면서, 어쩐지 쓸쓸한 두 연인의 모습이 비춰진다. 남자는 헤어질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그저 서 있지만, 여자는 아직 이 사랑을 놓을 수 없다는 듯 남자를 안고 있다. 불장난의 끝은 일방적인 사랑으로 끝나고, 결국엔 파국을 맞게 된다. 뒷배경에 보이는 큰 글자 Fate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의미하고, 이 단어의 형용사형인 'fatal'은 치명적이라는 뜻이 있다.

 

이 노래가 나온지도 꽤나 되었고, 확실히 그땐 '잘생기고 인기가 많지만 성격이 나쁜 남자' 타입이 하나의 유행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도 '나쁜 남자 신드롬'이라는 게 통하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요즘은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김수현이 연기한 문강태나, <사랑의 불시착>에서 현빈이 연기한 리정혁처럼 부드러운 남자가 더 인기있는 것 같다. 아마도?

 

 

 '애태우다'라는 단어의 의미

 

 

Look at me, look at me now
이렇게 넌 날 애태우고 있잖아
끌 수 없어 우리 사랑은 불장난 

 

 

'애태우다'라는 단어가 적절하게 잘 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장난이라는 테마에서 보이듯, '애태우다'와 '태우다'는 음도 비슷하고 연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애태운다라는 말을 들으면, 감질나게 줄 듯 말 듯 하지만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안절부절 못 하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부모님이 자식 걱정을 할 때도 애가 타고, 사랑하는 사람이 연락을 받지 않거나, 짝사랑을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삭히고 있을 때, 우리는 애가 탄다.

 

 

'애끓는다'라는 말은 몹시 답답하고 안타까워 속이 끓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애쓰다'라는 말은 수고하고 고생했다는 의미이다. '애를 먹이다'라는 말은 속상할 정도로 몹시 힘든 일을 겪는다는 뜻이다. '애간장이 녹다'라는 표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애'라는 것은 순 우리말로, 사람의 창자 중에서도 간과 쓸개를 의미한다.

 

'속상하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고 걱정하며 안타까워 할 때 장기가 상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말들이 나온 듯 하다. 의학적으로도 스트레스는 간에 좋지 않으며 만병의 근원이니, 이런 말들이 그냥 비유적인 것만은 아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한 인간의 사체액설(Humor theory)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인데, 사람의 몸은 4개의 체액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것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병이 난다고 보았다. 그 중에서도 간과 쓸개에서 분비되는 황담즙(bile)은 4원소 중에서도 '불'을 상징하며 황담즙이 많으면 화를 잘 낸다(choleric)고 보았다.  

 

히포크라테스의 사체액설

우울함을 뜻하는 멜랑콜리(melancholy)라는 단어도 간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어로 멜랑(melan)은 검은색을 의미하고, 콜리(chole)는 담즙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흑담즙이 많으면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울증과 화 모두 담즙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고, 우리말의 '애태우다'라는 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모두,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

 

뮤비를 보다가 잡다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글이 중구난방인 것 같다.

 

아무튼, 사랑은 정말 쉬운 게 아닌가 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