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랑니를 치료할 때, 치과의사가 내 이를 보더니 물었다.
"이를 꽉 깨무는 편이에요?"
"아, 네. 스트레스 받을 때..."
"송곳니가 갈려서 뭉툭해졌어요. 나이트가드를 해야겠는데요?"
띠로리... 이를 관리하기 위해 또 무언가를 해야 하다니!
이를 꽉 깨무는 습관이 언제부터 있었나 돌아보니, 십년은 넘은 것 같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예약날짜가 되고 치과에 접수를 하는 순간까지도 '이거 꼭 해야 하나. 지금까지도 없이 잘 살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에 들어서고 조금 기다리니 닥터 쿠사가 들어왔다. 내 의구심을 제쳐두고서라도, 닥터 쿠사는 본받을 만한 인물이다. 이 치과는 항상 환자들이 많아서 예약잡기가 힘들 정도인데, 아마 치과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좋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드무아젤, 어디 한번 볼까요? 오늘은 치아 3D 스캔만 할 거니까 간단해요."
닥터 쿠사는 환자가 결혼했는지 아닌지 상관없이 그냥 무조건 여자라면 마드무아젤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들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이것도 서비스일지도.
하지만 이 사람의 진가는 말끝마다 '땡큐', '땡큐'하고 감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점이라 생각한다. 15분도 안 되는 짧은 진료시간동안 땡큐라는 인사를 15번은 들은 것 같다.
"잠깐 입을 벌려볼까요? 좋아요, 땡큐. 그리고 다물어보세요. 땡큐. 잘하고 있어요. 퍼펙트. 그리고 이거 한번 꽉 물어볼까요? 땡큐. 굿 잡... 그리고 한번 더 크게 벌리고요. 땡큐."
기계로 치아를 스캔하는 것뿐인데 이렇게 감사인사와 칭찬을 많이 듣다니.
감사인사에는 힘이 있다는데, 정말인 것 같다.
스캐닝을 할 뿐이지만, 치과에 오는 건 언제나 긴장된다. 그런데 닥터 쿠사의 땡큐세례를 받고 보니 신기하게도 긴장이 풀리고 미소가 지어진다. 이래서 환자들이 끊이지 않는 거겠지...
"그런데 나이트가드 꼭 해야 하나요? 하면 뭐가 좋아요?"
"아, 좋은 질문이에요. 나이트가드를 하면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어요, 일단 치아가 마모되는 걸 막을 수 있죠. 이를 깨물거나 잘 때 이를 가는 사람은 치아가 손상되거든요. 그리고 두번째는 턱관절이 손상되지 않게 보호해 줘요. 이를 꽉 깨물면 턱관절에 힘이 들어가거든요. 관절 보호 효과도 있어요. 질문에 대답이 되었나요?"
"아... 네, 고마워요."
치아 스캔을 마친 시점에서 다시 취소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대답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가끔 이를 꽉 깨물어서 턱관절이 얼얼한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닥터쿠사는 다음 진료를 위해 훌쩍 가버리고, 나는 아직도 땡큐 세례 덕분에 살짝 멍멍한 기분으로 짐을 챙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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