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마인드컨트롤 -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건 놓아버리자

by 밀리멜리 2024. 1. 18.

반응형

과학시험 두 번째 파트인 랩 시험을 보러 갔다. 실험실이 있는 학교까지 가야 하는데, 회사에서 바로 가면 1시간이 걸린다. 랩 시험을 보는 날은 만 걸음을 그냥 걷는다.

 

눈 쌓인 학교 실험실 앞

 

사실은 월요일 저녁에 시험을 예약했는데, 막상 실험실에 시간 맞춰 갔더니 선생님이 예약 잡힌 게 없다고 시험을 치를 수 없다고 했다.

"오늘은 시험보러 오는 학생이 없다고 나오는데?"
"저는 예약했는데... 여기 예약 확인 메일도 보세요."
"그치만 오늘은 일할 수 없어. 난 이제 퇴근해야 해."
"... 그럼 어떻게 시험을 치죠? 내일 올 수 있나요?"

한 시간 걸려서 왔는데 시험을 칠 수 없었다. 황당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나 말고도 다른 학생도 시험을 치러 와서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글쎄, 내일은 학생이 아무도 없을 테니 괜찮겠어. 내일 오후에 올 수 있어?"
"그래요, 올게요."

사실 화를 낼 수도 있었고, 답답함에 짜증을 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 잘못은 아니고. 또 선생님의 퇴근시간도 지켜줘야 하니까. 

아마 내가 선생님이었다면 그냥 내가 늦게 퇴근하더라도 시험을 봐줬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시스템이 잘못되었더라도 그 때문에 사람이 야근을 할 수 없는 곳이다. 일찍 퇴근하는 게 미덕인 곳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내 옆에 있는 어린 학생이 말했다.

"이거 꼭 봐야 하는데요. 저 칼리지 가는 데 꼭 필요해요."
"내일은 시간이 되겠어? 오늘은 안 돼. 난 여기서 7시간 이상 일할 수 없어."
"그래요, 내일 올게요. 공부할 시간이 더 생겼네요."

어린 학생이 하는 말에 속으로 감탄했다. 나는 그냥 짜증이 났는데, 저 애도 짜증이 났을 텐데 공부할 시간이 생겼다고 표현하다니. 정말 어른스럽다.

 

 

실험실 바로 옆에 있던 포스터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고 마음을 수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전에 실험실에 와서 한번 쓱 보고 지나쳤던 포스터인데, 그 이후로도 마음에 남는 좋은 포스터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파란색) : 내 태도, 내 시간 투자할 곳, 내 주위에 있는 것들, 내 행동, 내 결정,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들일 것, 내 말, 내 에너지를 투자할 곳, 내 한계점, 내 믿음과 가치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은 놓아버리자 (노란색) : 다른 사람의 의견, 과거,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의 행동, 미래, 외부사건, 다른 사람의 행복, 날씨, 다른 사람의 실수

시험시간이 변경된 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니, 놓아버려야겠다.

 

 

그리고 화요일, 새로 잡은 약속시간에 가서 시험을 치고 왔다. 나무 판자를 가지고 저울을 만드는 게 과제였다. 실험실에서 사진을 못 찍어서 대충 비슷한 사진을 인터넷에서 구했다.

판자에 선을 긋고, 톱질하고, 못을 박고, 드릴로 구멍을 뚫어 나사를 박아서 간단한 저울을 만들었다. 

드릴을 사용할 때 드릴의 회전방향을 시계방향으로 맞추는 걸 두번이나 깜박해서 점수가 깎인 걸 빼고는 괜찮은 것 같다. 생전 처음으로 톱질을 해보고 드릴을 만져보는 것 같다. 헤헷, 나도 할 수 있구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