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 번 안과 검진을 다니는데, 수요일 아침 7시 반으로 예약이 잡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서두르고 길을 나섰다. 병원 가는 날은 어쩐지 모르게 떨리고 긴장이 된다. 그냥 체크하는 건데도 왜 긴장이 되는 걸까. 지하철 안에서 계속 심호흡을 했다.
아침 일찍 예약이 잡혀서 다행이다. 9시가 넘거나 오후 진료를 보는 날이면 대기줄이 엄청 길어서 2~3시간을 훌쩍 잡아먹는다. 접수처로 가니 다행히 줄이 하나도 없다.
"7시 반에 닥터 코헨과 예약이 있는데요."
"흠... 이상하네요. 닥터 코헨은 오늘 안 오는데. 잠시 카드 좀 주시겠어요?"
접수처 비서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본다. 아, 예감이 좋지 않구만.
"미안해요, 예약은 어제로 잡혀 있는데요."
"네? 어제였어요?"
"맞아요. 미안해요."
으! 전화로 예약을 받고 바로 캘린더에 날짜를 저장했는데. 아마 잘못 들었나 보다. 제대로 들었는데 날짜를 착각했거나... 아니면 전화한 접수비서가 잘못 말해줬거나.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비서가 웃으며 자꾸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아무래도 내 실수인 것 같다.
갑자기 땀이 쭉 났다. 서둘러서 일찍 왔는데 헛수고를 했네.
"아니예요, 제 실수일 수도 있죠. 그럼 예약을 다시 잡을게요. 가장 가까운 날이 언제예요?"
"아직 캘린더가 안 열려서 알 수가 없네요. 이달 말쯤... 그 전에 확인이 될 테니 우리가 전화를 다시 드릴게요."
"네, 알겠어요."
허탕을 치고 다시 출근하는 길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다 끝난 일인데 아까보다 더 긴장되고 자책감이 든다. 아! 왜 확인을 제대로 안 했을까? 예약시간인 7시와 날짜 7일을 혼동한 것 같다. 다시 오기 귀찮은데...
괜히 언어실력을 탓해 본다. 그놈의 영어! 그놈의 프랑스어! 이래서 외국에서 잘 살 수 있겠어? 괜히 서러워진다. 맨날 빠짝 긴장하고 살아도 덜렁대는 건 참 고치기가 힘들다.
이렇게 덜렁대는 성격 때문에 가끔 손해를 본다. 실제로 생긴 손해는 별 거 아니다. 다시 예약하고 가면 되니 좀 귀찮을 뿐이다. 하지만 정신적 데미지가 크다. 병원 오면서 긴장하고, 실수해서 자책하고... 결과적으론 별 거 아닌데. 자책하지 말아야지, 긴장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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