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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글

by 밀리멜리 202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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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wn Mendes - Treat you better MV

유나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렇게나 올려 묶은 머리는 시간이 갈수록 아무렇게나 흐트러졌다.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옆자리 운전석에 앉은 강석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유나의 귀에 대고 욕지기를 하더니 금세 술이 깬 모양이었다. 강석의 얼굴에 후회의 빛이 어렸다. 하지만 조금 전 뺨을 크게 한 대 맞은 유나는 귀가 먹먹해져 흐린 눈으로 강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멍 심해지겠다. 마사지 잘해서 풀어."

 

유나는 그저 체념한 듯 웃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차 문을 열고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유나의 크림색 니트 카디건이 스르르 떨어져 가녀린 어깨가 드러났다. 흰 피부 위에 보이는 시린 멍 자국이 아직은 쌀쌀한 그 날 새벽하늘 색깔 같기도 했다.

 

강석은 떠나는 유나를 굳이 붙잡지는 않았다. 어차피 저러다 며칠 놔두면 다시 돌아올 것이었다. 이럴 땐 한 수 물러나는 셈 치고 다른 여자를 만나면 될 것이다.

 

* * *

 

"유나 씨, 잠깐 커피 한 잔 할래요?"

 

사무실에서 멍하니 스크린만 보고 있던 유나를 따뜻한 향기가 불러 세웠다. 뒤를 돌아보니 형우가 말끔한 정장을 입고 커피 두 잔을 손에 들고 있다. 유나는 그를 따라 탕비실로 향했다.

 

"어제도 안 좋은 일 있었나 봐요. 표정이 안 좋은데."

 

"괜찮아요, 별 일 없어요."

 

"유나 씨 뺨에..."

 

"아! 점이 있어요."

 

유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형우가 말한 건 물론 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무척 수치스러웠다. 간밤의 상황을 얼추 짐작한 형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나 씬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알아요."

 

"난 유나 씨 애인이 싫어요. 나라면 유나 씨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 텐데. 유나 씨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줄텐데. 소중하게 대해주고, 품에 꼭 안아줄 텐데. 정말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유나 씨, 나를 봐줄 순 없을까요."

 

갑작스런 고백에 유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희고 긴 손가락은 커피 홀더만 꾹 잡고 있었다. 침묵이 얼마간 계속되자 형우는 코 위로 흘러내리는 뿔테 안경을 다시 올려 썼다. 갑자기 발목을 헛디딘 것처럼 몸에 확하고 열이 올랐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너무 나쁜 남자들이 많죠. 저도 남자지만 정말 어떤 놈들은 쓰레기 같거든요. 제가 봐도 구역질이 나요. 하지만 그런 나쁜 놈들만 있는 건 아니예요. 유나 씨가 얼마나 힘들지... 전 정말 자신 있어요. 잘 대해 줄게요." 

 

"형우 씨 진심을 말해줘서 고마워요.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저를 공주 취급해 주거나 보살펴 주는 게 아니예요. 그러니 형우 씨와 함께해도 제가 행복해질 일은 없을 거예요."

 

"그래요, 제가 아닌 건 알겠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과는 헤어지세요. 제가 아니더라도..."

 

"그럴 순 없어요."

 

"왜죠? 그 사람이 뭘 갖고 있길래! 그렇게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그 사람을 만나요? 어떤 점이 마음에 든 거예요?"

 

"그 사람하고 있으면, 지루하지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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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

 

Shawn Mendes - Treat you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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