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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1층에서 이웃들과 수다떨기

by 밀리멜리 202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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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건물의 시큐리티 가이 노먼은 항상 친절하다. 그래서 모두가 노먼을 좋아하고, 사람들은 외출을 하다가도 멈추고 노먼과 이야기를 하길 좋아한다. 노먼이 이웃들을 소개해 준 덕분에 한참 수다를 떨다 왔다.

 

노먼이 팔을 다쳤다길래, 걱정이 되어 물었다.

 

"팔 다쳤다고,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여자친구랑 자전거를 타는데, 내가 뒤따라 가고 있었어요. 근데 내가 바짝 붙어가다가 여자친구가 갑자기 멈추길래 나도 멈추려고 했는데, 그만 자전거에서 떨어져서 팔을 좀 다쳤어요."

"어휴, 아프겠다. 병원 가봐야 하지 않아요?"

"괜찮아요. 만지면 좀 아픈데, 뭐 금방 낫겠죠."

"무리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다가 지나가던 어느 중국계 여자도 노먼에게 말을 걸었다.

 

"노먼, 팔 다쳤다구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이쪽은 아이리스예요."

 

노먼이 아이리스를 소개시켜 주었고,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아이리스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 사람이에요?"

"한번 맞춰볼래요?"

"아이 참, 나도 아시아 사람이지만 정말 구분 못해요. 근데 중국인은 아닌 것 같고.. 혹시, 한국인?"

"오! 맞췄어요. 잘 맞추네요!"

"오, 사실 나도 맞춘 것 처음이에요. 반가워요. 한국 정말 좋아하는데! 난 런닝맨 정말 많이 보거든요!"

"런닝맨! 좋아하시는구나!"

 

노먼이 런닝맨이 뭐냐고 물었지만 딱히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음, 그게... 한국에서 유명한 TV쇼예요. 글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좋지? 그런 쇼를 버라이어티 쇼라고 하는데, 연예인들이 나와서 달리고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광수! 이광수 정말 좋아해요!"

 

아이리스가 활짝 웃으며 이광수 이야기를 했다. 난 솔직히 런닝맨을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뭐라도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말했다.

 

"아, 그 사람 모델이죠?"

"아하하하.. 모델이긴 한데, 엄청 웃겨요."

"런닝맨이 아직도 방송해요?"

"그럼요! 아직도 해요. 아니, 한국인인데 그걸 몰라요? 난 한국 사람은 모두 런닝맨을 보는 줄 알았는데!"

"예전에는 본 적 있는데, 요즘에는 안 본지 꽤 됐어요."

 

결국 아이리스는 알아버렸다. 한국인인 나보다 중국인인 자신이 런닝맨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이광수를 모델이라고 부른 것에서부터 이미 티가 났다. 내가 왜 그 말을 했던거지...

 

그녀는 케이팝으로 화제를 돌렸다. BTS, 여자친구, 소녀시대... 그러나 케이팝에 관해서도 나에게서 뭔가 정보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살짝 실망한 듯 했다. 결국 그녀는 케이팝에서 케이 뷰티로 화제를 옮겼다.

 

"한국 화장품 진짜 좋잖아요. 메이크업도 예쁘고 화장품 가게도 많고..."

"화장품 가게 정말 많죠. 골목마다 서너 개씩 있을 정도인데요. 한국 화장품 많이 써요?"

 

이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라네즈, 잇츠스킨, 궁 자가 쓰인 샴푸, 꿀 마스크팩 등등을 보여주며 한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런닝맨과 케이팝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열심히 그녀의 말에 끄덕끄덕하며 최대한 관심을 보이려 했지만, 한국 화장품 역시 나보다 아이리스가 더 전문가였다. 한류가 대단하긴 한가 보다. 어떻게 평생 한국에서 살았던 나보다 한국 방송과 가수, 제품을 더 잘 알지?

 

내가 한국 뷰티제품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자 수다가 좀 지루해졌는데, 그 때 어떤 여자가 새하얀 강아지를 데리고 지나갔다. 강아지가 너무 예뻐서 우리는 모두 그 강아지를 보고 감탄을 했다. 노만이 먼저 물었다.

 

코카스파니엘 (픽사베이)

 

"강아지가 너무 예쁘네요. 만져봐도 괜찮아요?"

"그럼요. 어차피 사회화 훈련을 시켜야 해서요. 간식 드릴테니 먹여주세요."

 

우리는 모두 모여들어 강아지에게 인사를 했다. 강아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애교를 부렸다. 사회화 훈련 필요없을 정도인데? 아, 너무 예쁜 강아지가 내게 애교를 부리다니 정말 행복하다... 사진을 찍어 놓을걸...

 

"와, 덕분에 오늘 하루 정말 행복해졌네요! 강아지 몇 살이에요?"

"이제 9주 되었어요."

"세상에! 아기 강아지네. 훈련할 게 많겠어요."

"맞아요. 강아지 돌보는 데 손이 정말 많이 가요. 오늘만 벌써 6번째 산책이에요."

"지금이 오후 4시인데, 벌써 6번이나 나왔다구요? 와... 엄청난 노력이네요."

"코카스패니얼이라서 에너지가 넘쳐요. 하루에 열번도 더 나오는걸요."

 

아멜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1층에서 수다를 떠는 동안 세번이나 더 나갔다 들어왔으니, 그날 낮에만 9번 산책을 한 셈이었다. 코카스패니얼 키우기가 쉽지가 않구나...

 

귀여운 강아지 덕분에 또 다른 이웃 여자가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강아지를 구경했다. 역시 주민 모두를 알고 있는 노먼이 통성명을 시켜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시에나였다.

 

"시에나는 하프 마라톤을 뛰어요. 오늘도 뛰고 온 거예요?"

"맞아요."

"와, 하프 마라톤이라니 대단해요!"

"그리고 시에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예요."

"멋지네요!"

"하하, 글쎄요. 나중에 취업이나 잘 했으면 좋겠는데요."

"지금은 학생이군요. 당연히 취업 잘 할 수 있죠!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요?" 

 

그리고 이야기는 또 강아지로 넘어갔다. 시에나가 핸드폰을 꺼내 자신이 미국 농장에서 키우던 보더콜리 두 마리를 보여준 것이다.

 

"와, 눈이 하나는 파랑색 하나는 갈색이네요. 특이하다!"

"보더콜리 중에서도 그런 종이 많은 것 같아요. 시베리안 허스키도 그렇고."

"강아지들은 지금도 미국에 있어요?"

"네, 아무래도 사냥개니 넓은 데서 뛰어노는 게 좋죠. 이런 아파트에서는 키우기 힘들 거예요."

"그렇겠죠. 우리도 아멜리아가 코카스패니얼 데리고 벌써 몇번째 왔다갔다 하는 걸 봤으니..."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이미 2시간이 지나있었다. 노먼이 퇴근할 시간이 되고, 우리는 서로 저녁을 먹으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코로나 판데믹 이후로 사람들과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제 친구가 생겨 흐뭇해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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