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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캐나다 주택 구매 과정 - 홈 인스펙션 따라가서 집구경한 날

by 밀리멜리 202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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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몬트리올 외곽에 집을 살 계획이란다. 나는 평생 도심의 아파트에서만 살아봤기 때문에 조용한 마당이 있는 주택은 어떨지 궁금했다. 나도 나중에 여기서 집을 살 계획을 갖고 있어서, 주택을 구매하는 과정은 어떨지 이번 기회에 한번 배울 겸 친구를 따라 집 구경을 가기로 했다.

 

친구는 이미 이곳에서 집을 산 경험이 꽤 있었다. 집을 구매할 때마다 사브리나라는 부동산 중개인의 도움을 받았고, 이 중개인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한다. 친구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사브리나가 중개해 준 집이라서 그녀에게 가지는 신뢰감이 대단했다.

 

집 구매 과정은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데, 나중에 사고 나서 집에 하자가 발견되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구매하기 전에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데, 나처럼 주택을 아예 모르면 어떤 것을 점검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서 친구는 전문 홈 인스펙터를 고용해 집의 상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40여분 정도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몬트리올 외곽의 느낌은 정말 조용하고 북미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복잡하고 인종이 다양한 다운타운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도로 하나를 둘러싸고 약 13채 정도의 집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의 이웃들이 백인 노인이었다....(!)

 

구경하러 간 집

약속한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하자, 사브리나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사브리나는 마르고 까다로운 할머니였는데, 집 구경하러 쫄레쫄레 따라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곳 스트리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야. 얼마나 예쁘고 조용하니?"

 

라는 말을 몇번이나 하셨는데, 예쁘고 조용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복작복작한 것에 익숙한 내게는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 슈퍼나 카페도 멀고, 도서관이나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은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요새는 이렇게 예쁜 집이 드물어. 지붕에 창문이 나 있는 것이 캐나디언 건축 양식인데, 이 거리에서 유일하게 이 집만 캐나디언 양식이야."

 

듣고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빨강머리 앤도 캐나다가 배경인데, 특히나 2층 창문을 보니 빨강머리 앤이 머물던 초록지붕 집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브리나는 인스펙터 폴을 소개해 주었다. 

 

"폴은 30년 넘게 이 일을 했어. 독일인이라 그런지 아주 철저하고 설명도 잘해줘. 다른 인스펙터는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니깐."

 

하며 입이 마르게 폴을 칭찬했다. 폴은 독일인답게 정확한 시간에 도착해 아주 꼼꼼하게 사진을 찍었다. 집을 조사하는 내내 무엇을 조심하고 무엇을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정말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사실 그 모든 설명이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런 걱정을 알아챘는지 폴은 걱정말라며, 친구에게 이메일로 몇십 장의 사진이 첨부된 보고서를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지붕까지 꼼꼼히 점검하는 인스펙터 폴

이 집은 1967년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집이다. 하지만 집주인이 정말 잘 관리했는지 인테리어가 정말 예쁘고 깔끔했다. 집주인 부부를 만나 잠깐 인사했는데, 성격 좋은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셨다.

 

"집이 너무 깔끔하고 좋네요. 이 집에서 16년이나 사셨다고요?"

"맞아요. 이제 우리 애들도 다 크고 독립해서, 우리 부부 둘이서 살기엔 너무 커서 이사를 가려고 해요."

"그러시군요. 그렇게 오래 사셨는데 이제 떠나시려니 기분이 어떠세요?"

"아, 정말 좋은 추억이 많아요. 여기서 아이 셋을 길렀는데, 우리 애들이 정말 잘 컸어요. 이웃들도 다 친절하고 좋아요."

"이웃분들은 프랑스어를 쓰나요, 영어를 쓰나요?"

"대부분 둘 다 하죠. 걱정 마요. 프랑스어 할 수 있어요?"

"프랑스어 수업을 들어서 좀 할 수 있어요."

"오, 정말 잘됐네요, 하하하하..."

 

인테리어가 예쁜 거실

 

이렇게 웃고 떠들고 있는데 사브리나가 갑자기 나를 데리고 구석으로 가더니 '집주인과 이야기하지 말라'라는 경고를 주었다. 왜냐고 물으니 '이 사람들은 니가 모두 뺏어갈 거라 생각할거야(They think that you will take everything from them)'라고 말했는데, 아직도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 내가 구매자도 아닌데 집주인과 이야기하다가 민감한 사항이 새어나올 수도 있어서 그런 경고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알겠다고 하고 그 담부턴 그냥 조용히 폴을 따라다니며 설명을 들었다. 

 

뒷마당이 보이는 부엌

날씨가 추운 캐나다에서는 보온과 방풍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보일러를 쓰는지, 창문은 이중창인지 단일창인지 확인하는 게 좋다. 이 집은 오래된 만큼 난방장치도 오래되었고, 집을 사려고 한다면 난방장치도 함께 교체해야 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또한 집의 가장 높은 곳에서 수압을 체크해야 한다. 세면대와 변기, 욕조의 물을 모두 틀어보고 수압이 약해지지 않는지, 물이 잘 나오는지 확인한다. 2층의 마룻바닥이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살짝 뒤틀림이 있었지만 큰 결함은 아니었다. 

 

벌레 문제는 없었고, 예전에 개미가 나온 적이 있지만 방충업체를 불러 해결했다고 한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곳은 지하실인데, 정말 관리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환기가 잘 되어야 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유지해야 지하실벽에 금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적정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하실을 쓰지 않아도 자주 자주 에어컨과 라디에이터를 켜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관리비가 엄청 나겠는걸...!)

 

잘 꾸며진 지하실

지하실도 엄청 넓었는데, 배관과 보일러가 모여 있어서 이곳에서만 한시간동안 설명을 들었다. 드라이월이니 씰링이니, 화강암이 섞여있는 벽이어서 좋다는 평가 등등을 쉬지않고 설명했다. 폴의 열정적인 전문용어 남발에 이제 나는 머리를 비우고 그냥 끄덕끄덕만 했다. 아무리 꼼꼼하다지만 집 인스펙션에 3시간이 걸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하실에서는 에어컨이 가장 낮은 온도로 계속 돌아가고 있어서 좀 춥게 느껴졌다. 특히 사브리나는 더욱 추워했는데, 나중에는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춥다. 내 손 좀 느껴봐. 날씨가 참 이상도 하지."

"맞아요. 에어컨 때문에 실내도 춥지만 오늘 야외날씨도 좀 쌀쌀하네요. 괜찮아요?"

"난 혈액순환이 안 좋은 편이라, 밤에도 스웨터랑 양말을 몇겹씩 입고 자."

"평소에도 추워하는군요. 우리 이제 햇볕을 좀 쐬러 가요."

 

폴이 마지막으로 마당 관리를 설명해 주었다. 마당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빗물과 습기 관리이다. 비가 올 때 지붕의 빗물받이에서 나오는 물을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빗물이 집 주변에 스며들면 지하실 벽에 손상이 가기 때문에 비가 올 때마다 점검해 주는 게 좋다고 한다.

 

"사브리나, 오래된 집이 정말 예쁘긴 한데 책임도 많고 해야 할 일도 정말 많네요."

"맞아. 이 일을 오래 해왔지만, 어느 집이나 문제가 없는 집은 없어. 그걸 관리하는 게 처음에는 벅차 보이겠지만 나중에는 차차 자기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하게 돼. 걱정 마."

 

집을 관찰한지 3시간이 딱 되자마자 정확하게 폴이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했다. 폴은 친구에게 자기가 설명한 걸 다 알아들었는지, 궁금한 점은 없는지 수차례 확인하고, 서류 작업을 한 뒤에 훌쩍 떠났다. 역시 독일인이구나... 폴이 떠나고 나서도 사브리나는 폴이 얼마나 친절하고 프로페셔널한지 칭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무튼, 주택을 산다는 건 정말 큰 결정이구나 싶은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친구에게 집에 대한 인상이 어떠냐 물으니, 다 좋은데 오래되어 관리할 점이 많다는 것이 걸리지만 앤틱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집값이 비싸졌다지만 친구에겐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덕분에 귀한 경험을 한 것 같아 친구에게 고마웠는데, 또 친구는 3시간동안 지루한 설명을 함께 들어줘서 고맙다며 맛있는 치킨을 대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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