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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바람인가 연애관인가? 폴리아모리와 일부일처제에 대한 생각

by 밀리멜리 202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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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불륜 관련 이야기가 정말 많다. 드라마도, 영화도...

 

드라마와 영화에서 바람피우는 역할도 해보고, 바람을 당한 역할도 해본 여배우 송지효는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부터 바람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둘이 하는 것인데 한 명이 끼어들었을 때, 나머지 한 사람을 배제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바람이고, 상대방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에 깊은 공감이 간다. 맞아, 거짓말하는 것부터 바람이지.

 

그런데 또 다른 재미있는 생각이 든다. 아예 처음부터 여러 사람을 만나는 걸 밝힌 사람이라면? "사랑은 둘이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만약에 여럿이 함께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사랑은 둘이 하는 거잖아요

 

유튜브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4wSRMk23CaA 

 

 

 얘도 좋고 쟤도 좋아, 폴리아모리

 

일부일처제를 따르지 않고, 세 명 이상의 비혼자가 함께 사랑하는 형태를 폴리아모리(polyamory)라고 한다. 퀘벡에는 실제로 폴리아모리 연애관을 가진 사람이 많은 편이다.

 

뼛속부터 K-유교걸, 남녀칠세부동석을 듣고 자란 나는 낯선 이국땅에서 '오픈 릴레이션십(open relationship)'이라는 말을 듣고 문화충격을 받았다. 오픈 릴레이션십도 폴리아모리와 비슷한데, 애인이나 배우자가 있어도 당사자간 협의 하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연애관을 말한다. 반대로 둘만 사랑하는 것을 익스클루시브 릴레이션십 (exclusive relationship)이라고 한다.

폴리아모리

 

사랑은 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얘도 좋고 쟤도 좋은데, 이런 관계가 싫으면 나를 만나지 마! 폴리아모리들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황당해서 딱히 말이 안 나왔지만 뭐,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무지 익숙해졌다. SNS 프로필에 오픈 릴레이션십 딱 적혀있는데, 굳이 거기에 내가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위 영상에서도 프랑스 사람들은 불륜 자체가 도덕적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나온다. 프랑스 문화가 강한 퀘벡에서도 '오픈 릴레이션십'을 지향하는 사람이 많아서, 사랑을 아예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연애관이 같지 않다면...

 

어느 날 퀘벡 친구가 이런 연애상담을 해왔다.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가 너무 좋은데 말이지, 정말 좋아하는데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사랑하는 만큼 그 여자는 나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거든."

"아, 그건 정말 슬프겠다."

"사실 이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 여자친구는 오픈 릴레이션십 주의거든."

"뭐, 정말? 괜찮아? 혹시 너도 오픈 릴레이션십이야?"

"아니, 나는 아니야. 둘만 사랑하는 게 더 좋아."

"하... 둘이 가치관이 다르니 정말 어쩔 수 없구나. 그럼 네 여친은 지금도 다른 사람 만나는 거야?"

"글쎄, 아직 몰라. 하지만 자기 가치관이 그렇다고 사귀기 전에 말했거든."

"아, 먼저 밝혔구나."

"그걸 알면서도 내가 좋아서 사귀었는데,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이 참 힘든 것 같아."

"네가 힘든 게 당연하지. 친구사이에서도 믿음이 보답받지 못하면 서운한데, 연인 관계에서는 더 힘들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아무래도 여자친구하고는 정리해야겠어."

 

모두가 같은 마음일 수는 없지

 

이 친구는 결국 폴리아모리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지금은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한 사랑에 빠져 있다. 아무래도 폴리아모리들은 폴리아모리끼리 사랑해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은 한 사람만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여러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아내가 두 명?!

 

폴리아모리가 자유로운 문화권에서 나온 연애관이라면, 성적으로 보수적인 나라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없겠지 싶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몬트리올에서 대학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한 지인은 리비아 사람인데, 그는 리비아에 두고 온 아내가 두 명이라고 말했다.

 

"아내가 둘이라고?!"

"응, 맞아.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가능하거든."

"왓!!!!!! 말도 안돼!" 

"잠깐잠깐, 너희들이 놀라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 들어봐. 우리나라에서 아내를 둘 이상 가질 때는 규칙이 있어. 아내들에게 재산을 똑같이 공평하게 나눠주고, 따로 집을 주고, 사랑도 똑같이 줘야 해. 각각 집에서 머무는 날도 공평하게 같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법이고 범죄행위야."

"와... 그렇구나, 와..."

 

폴리아모리는 그럭저럭, '그래 니들이 좋은대로 알아서 잘 살겠지' 정도로 잘 받아들였지만, 아내를 둘 이상 맞이하는 문화에는 역시 컬쳐쇼크가 강하게 왔다.

 

사랑도 공평하게

 

그러나 설명을 듣고 나니, 리비아에서도 합법적으로 아내를 둘 이상 둔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일단 집이 두 채 이상 있어야 하고, 다른 아내가 있어도 괜찮을 정도의 위로금(?) 수준의 재산을 각각 아내에게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하니, 적당히 부자가 아니고서야 힘든 이야기였다. 아내들도 큰 불만 없이 산다고 하니... 여기도 결국엔 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게 된다.

 

 

 

 일부일처제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렇게 사랑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있는데, 두 사람이 독점적인 사랑을 하는 일부일처제는 사실 사랑 때문이 아니라 소유 개념때문에 생겨났다는 게 더욱 흥미롭다. 아시아 일부일처제의 기원은 기원전 3000~2000년 사이의 신석기 후기 문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들어오면서, 농업 혁명이 진행되고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한다. 농작물을 많이 생산하고, 그걸 보관할 수 있게 되니 이걸 누가 소유하느냐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사유재산이 생기고 남성의 근력이 필요해지면서, 남성이 소유를 정당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풍요로움을 자기 자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만들어낸 일부일처제

 

사유 재산을 가진 남성은 확실히 자신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확신하는 자식에게 재산을 모두 주려는 욕구를 갖게 된다. 하긴, 무덤까지 그 재산을 끌고 갈 수 없으니 자기 자식에게 주고 싶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여성이니, 여성 중심의 모계 사회에서 남성은 누가 자신의 자식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이 욕구를 실현시키려면 오직 한 여성을 독점해야 한다. 이로 인해 일부일처제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자료출처: 최진석,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이런 형태의 사랑도 있고, 저런 형태의 사랑도 있다. 별 사람을 다 만나는 경험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무튼 결론짓자면, 상대방에게 정직하고 상대방이 상처 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아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송지효 말이 맞아.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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