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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평소에는 친절하지만 하키에는 과격한 캐나다 사람들

by 밀리멜리 202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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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사람들이 하키를 열정적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평소에는 친절하지만, 자기 도시가 하키 경기에서 지면 미친듯이 날뛴다고...

 

몬트리올 하키팀을 축하하는 사람들

 

몬트리올도 예외는 아니다. 몬트리올을 연고지로 하는 하키팀은 "Montréal Canadiens"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다른 팀들이 라이트닝, 골든나이츠, 레인저스, 블랙호크 등등 엄청 세보이는 멋진 이름을 갖고 있는 것에 비해 몬트리올은 그저 캐내디언이라고 부르는 것이 특이하다. 아니, 캐내디언이 아니라 이곳 발음으로 꺄나지앵이라고 부른다. 

 

이곳 팬들은 "몽헤알 꺄나지앵"이라는 이름 대신 짧게 "햅스(HABS)"라고 부른다. 하키 시즌이 아닐 때에도 사람들이 사진 속의 C와 H가 그려진 햅스 로고가 그려진 옷들을 많이 입고 다녀서, 난 내가 모르는 유명 의류 브랜드가 있나 했다. 

 

"아니, 몬트리올 캐내디언을 줄였는데 왜 햅스야? 전혀 관련이 없잖아?"

"Habs가 Habitants의 줄임말이거든."

 

알고 보니, Habitants는 거주자라는 뜻도 있지만 프랑스계 이민자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100년 전부터 그렇게 불렀으니 따져봐야 뭣하리... 아무튼 햅스가 입에 딱딱 붙고 더 친근하긴 하다.

 

"그럼 햅스에는 프랑스어 쓰는 퀘벡계 선수가 많겠네? 선수들이랑 코치랑 다 프랑스어를 하나?"

"어... 아니. 예전에는 그랬는데 이제는 팀에 캐나다 선수도 얼마 없어."

 

백년 전부터 이런 이름이 붙었으니 햅스는 전통의 강호 팀일 것 같지만, 최근 20년간은 약팀 중의 약팀, 베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항상 언더도그로 꼽혔다. 플레이오프 시즌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옆도시 토론토에 매번 얻어맞는 신세였다. 좋은 선수를 키워놓으면 돈 많은 미국팀에 뺏기기 일쑤여서, 미국팀에 오히려 퀘벡 선수가 많단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인걸, 이거.

 

그렇게 맨날 예선에서 지던 햅스가 어쩐 일로 올해에는 플레이오프를 다 제치고 결승전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햅스가 우승했을 때가 1993년이라고 하니, 이번 일은 경사 중에 경사라는 것이다.

 

결승진출이 확정된 날 몬트리올은 새벽까지 경적 소리와 "고 햅스 고(Go, Habs, Go)!" 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시끄러웠다. 그날은 참 잠을 이루기 어려웠는데, 사람들이 신나니 하키를 잘 모르는 나까지도 신이 났다. 

 

그러나 다음날 뉴스...

 

사람들이 너무 신이 나서 경기장 밖 주차된 경찰차를 뒤엎어 버렸다. 15명이 체포되고, 그래도 사람들이 진정하지 못해서 최루탄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결승전 소식에 신나서 경찰차를 뒤엎은 몬트리올 사람들 (출처: CBC 뉴스)

음... 하필 경찰차를 뒤엎다니. 미국에서 이랬으면 최루탄이고 뭐고 바로 총부터 겨눴을지도 모르겠는데...

 

 하키라는 스포츠 자체가 엄청 과격하고 공격적이다. 다른 스포츠에서라면 감히 시도도 못할 정도의 폭력(?)이 난무한다. 상대방 선수의 몸을 때리는 것 정도는 가벼운 견제이다. 뒤통수를 때리거나 멱살잡이도 흔하고, 하키스틱으로 다른 선수의 스케이트를 걸거나, 선수의 코에서 피가 줄줄 흘러도 반칙 선언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때에는 심판에게 야유가 쏟아졌다)

 

이전에 봤던 하키팬들의 폭동 뉴스와 다른 점이 있다. 다른 하키팬들은 경기에 져서 그 분노감에 폭동을 일으켰다면 몬트리올 사람들은 너무 오랜만에 이겨서 그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다. 매번 지는 것만 보다가 거의 20년만에 이긴 것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아무튼 사람들이 이렇게 신이 나다 보니 하키를 모르는 나도 하키경기를 보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그때의 흥분과 열광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면 좋을텐데...

 

하지만 하키 초심자는 경기 흐름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다. 일단 축구에 비해 너무 공수전환이 빠르고, 선수도 빠르고, 퍽도 빠르다. 선수들은 40km, 하키 퍽은 무려 시속 170km로 날아다닌다.

 

사람들이 와아아아아!!! 하고 함성을 지르면 그제서야 골이 들어갔구나 싶다. 나도 경기를 즐겨보고 싶은데 일단 퍽이 보이지 않으니 즐기기는 커녕 눈운동하기에 바쁘다. 언제쯤 저 빠른 하키퍽이 잘 보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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