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Savage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디즈니 고전영화 <포카혼타스>의 OST인 'Savages'가 떠오른다. <포카혼타스>는 미 대륙 원주민 추장의 딸인 포카혼타스가 백인 개척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야기이다. (스토리라인 자체는 너무나 백인중심으로 왜곡되었지만, 시대가 옛날이니 어쩔 수 없다.) 원주민들과 개척민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포카혼타스를 사랑하는 존 스미스는 원주민들에게 스스로 포로로 잡힌다. 그 사실을 안 개척민들은 원주민을 보고 전쟁을 준비하며, 서로를 '야만인'이라며 비난하는 노래이다.
www.youtube.com/watch?v=3oEWA7UglB4
한국에서는 '결투의 노래'라고 소개되었는데, 원곡 버전을 들으면 'Savage! Savage!'하고 부르짖는 외침과 장엄한 북소리가 어울려 전쟁 전야의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 빌런 송 중의 하나이다. 가사는 너무 악하지만...
What can you expect (뭘 기대하느냐)
From filthy little heathens? (저 더럽고 하찮은 이교도들!)
Their whole disgusting race is like a curse! (역겨운 인종들, 저주 같구나!)
Their skin's a hellish red (피부는 지옥불처럼 뻘겋고)
They're only good when dead (죽은 놈들만 좋은 놈들이구나)
They're vermin as I said, and worse! (버러지보다 하찮은 놈들!)
They're savages! Savages! (야만인! 야만인!)
Barely even human (인간도 아니야)
Savages! Savages! (야만인! 야만인!)
Drive them from our shore! (우리 땅에서 쫓아내자!)
최근까지도, 아메리칸 원주민을 두고 savage라고 말했다가는 정말 큰일날 수도 있다. 이는 인종차별, 인종을 비하하는 말로 여겨지며, 흑인을 두고 N word라고 칭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심각한 단어이다. 바로 작년만 해도 캐나다의 한 원주민 혈통인 선생님이 학생들이 Savage라는 문구가 쓴 티셔츠를 입은 것을 보고 판매자에게 항의를 한 적이 있다. Black Lives Matter처럼 흑인 인종차별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원주민 차별 또한 큰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와는 별개로, 최근 몇년 간 savage는 슬랭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주로 '과감한 사람, 다른 사람들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을 뜻한다. badass라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savage나 badass라는 말은 겉보기와는 달리 남을 칭찬하는 말인데,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을 굉장히 쿨하게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 끙끙거리며 힘들게 하는 일을 손쉽게 처리하고 나서, 그게 뭐 별거야? 하는 태도를 보고도 savage라고 칭할 수 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스턴트 없이 직접 800미터 건물 빌딩에 오른 것처럼 말이다.
혹은 필자가 <그리스인 조르바>의 포스팅에서 말한 것처럼, 두 사람이 서로를 조롱하며 말싸움을 하는 상황에서도 쓰일 수 있다. A가 B를 먼저 놀렸지만, 놀림을 당한 B가 더 멋지게 A를 반격해 성공했을 때 'That was savage!'라고 말할 수도 있다. 힙합의 랩배틀에서 자신을 디스한 래퍼를 상대를 더 멋있게 디스해서 격파시켰을 때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최근에 생겨난 슬랭으로서의 savage는 누군가 일을 멋지게 잘 해냈을 때 그를 칭찬하는 말로 쓰인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팝 컬쳐에서 자신을 savage라고 칭하는 것은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예로, 카디 비의 유명한 <WAP>을 피쳐링했던 메간 디 스탈리온도 <Savage>라는 곡을 발표했고, 곧 나오게 될 블랙핑크의 앨범에도 <Pretty savage>라는 노래가 실려 있다.
패션 스타일에도 savage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거칠고 와일드한 패션이라고 해서 꼭 savage는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시도하기 어려운 과감한 스타일을 모델처럼 잘 소화했을 때 savage라는 말을 쓴다. 예를 들어, 누가 봐도 촌스러워 보일 법한 반짝이 드레스를 입었는데 너무도 잘 어울리고 멋있을 때나, 푸른색이나 형광초록으로 머리를 염색했는데 그게 이상하지 않고 잘 어울릴 때 쓸 수 있겠다. savage 하다는 말 듣기가 쉬운 게 아니다.
멋있게 보인다고 아무나 savage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손쉽게 해버리고, '그게 뭐 어때서?' 하고 툭툭 어깨 좀 털어줘야 진짜 savage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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