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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음악 리뷰

레이디가가 <911> - 911의 두 가지 뜻

by 밀리멜리 202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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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가가의 911 뮤직비디오에는 대단한 반전이 있다. 오늘은 그 반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www.youtube.com/watch?v=58hoktsqk_Q&ab_channel=LadyGagaVEVO

 

이 뮤직비디오는 무척 화려하다. 알록달록한 색깔과 미묘한 분위기가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끌면서도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건지 궁금하게 만든다. 가가의 매혹적인 의상이나 소품들, 주변인들의 이국적인 옷차림이나 파라다이스 같은 배경 등이 무척 신비스러워 어떤 상징이 담겨있는 건지 넋을 놓고 보았다. 

 

그러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반전이라니. 노래가 끝날 때쯤 소리를 지르고 장면이 전환된다. 그 모든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가가(스테파니)의 환상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향정신성 약물을 먹고 보는 환각. 정말 충격적이었다.

 

다른 리뷰어들은 가가의 환상 속에 있는 이미지와 상징들을 해석하려고 하던데, 나는 사실 그 상징들은 관심이 없다. 그것들은 약물이 만들어 낸 예쁜 파라다이스이자 환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예쁘게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만든 다음 자신의 메시지를 확고하게 전달하려는 게 의도가 아닐까?

 

이 노래에서 가가가 하려는 말은 간단하다.

 

나 내 자신이 싫어. 정신병약 먹으면서 죽을만큼 힘드니깐 살려줘. 이 약 먹다가 약물중독으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 나 죽기 전에 꼭 911 불러줘. 죽고 싶지는 않은데 나 정말 죽을까봐 걱정되거든.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다. 레이디 가가처럼 세계적인 슈퍼스타일지라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파파라치나 악플 때문에 일반인보다 그 감정이 더 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사를 보면, 레이디가가는 그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약을 먹는다. 가가는 이 약을 emotional fader라고 부르며, 그 말대로 감정을 둔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자기혐오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괴로워할 때 그녀를 구해주는 911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무표정하고 무감각해 보인다. 약에서 깰 때는 제외하고 말이다.

 

문제는 레이디 가가가 너무도 괴로운 나머지 한 번 약을 입에 털어넣고 또 털어넣고, 환각이 주는 파라다이스에 빠져 또 털어놓고 하면서 그걸 반복한다는 점이다. 향정신성 약물을 정량대로 먹지 않고 계속 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끝은 약물중독사일 것이다. 결국 진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가 되어 911에 연결해달라고 하며 노래는 끝을 맺는다.

 

또, 가가는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더라면, 사랑을 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한다. 곁에 소중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자신은 자기를 지켜줄 사람이 없으니 911을 불러달라고 호소한다.

 

그래서 911은 말 그대로 자신을 구해주는 존재를 의미하며, 1절에서는 자기혐오로부터 구해주는 정신병약을 의미하고, 2절에서는 약물중독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는 실제 구급요원을 뜻한다. 후렴에서 반복되는 "Pop a 911" 구절은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자신을 구해주는 정신병약이 자신을 죽게 만드니, 이것보다 더한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실제로 레이디 가가가 이 가사를 진심으로 썼다면, 그녀는 정말 위태로운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메시지를 뮤직비디오와 노래를 통해 이렇게 충격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다니, 정말 위대한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너무도 안타깝고, 안타깝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더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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