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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코리안 티처를 읽고 - 계약직 어학원 강사의 고단한 직장생활

by 밀리멜리 202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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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 싶었다. 나도 코리안 티처니까. 한번 펼치니 멈출 수가 없어서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왜 그렇게 푹 빠져 읽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 내 모습과 내 직장동료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코리안티처 - 서수진 작가

이 책에서는 명문 H대의 어학당에서 일하는 네 명의 한국어 강사 스토리가 나온다. 나는 한국어 강사가 아니라 영어 강사였고, 명문대 어학원이 아닌 동네 학원에서 일했지만, 비정규직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일이란 대개 비슷한 것 같다. 책을 읽다가도 내가 겪은 일들이 겹쳐져 잠깐 멈추고 멍하니 몇 년 전 일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이 포스팅은 독후감이라기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을 스쳐간 일들을 그냥 한탄하듯이 풀어써 본 것이다.

 

 

 계약직 어학원 강사의 삶

 

불안하고 고단하다. 계약직의 삶은. 

 

내가 처음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일이다. 모두가 수업에 들어가고 교무실에 어느 여자 선생님과 단 둘이 남았는데, 그 선생님이 내 손을 잡고 몰래 구석으로 가서 해 준 이야기가 있다.

 

"선생님, 이제 일 시작한 건 알지만 빨리 그만두는 게 좋을 거예요."

"왜요?"

"한국인 여자가 여기에서 제일 낮은 등급이거든요. 나는 다음달이면 나가요. 내가 너무 안타까워서 말해주는 거니까, 선생님도 생각 잘해봐요."

 

한국인 여자가 제일 낮은 등급이라니, 무슨 계급 사회도 아니고... 나는 그냥 그 말을 무심코 넘겼다.

 

하지만 그게 곧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등급에 따라 월급이 정해져 있었다. 백인 및 외국인 교포 선생님이 1등급, 한국인 남자 선생님이 2등급, 한국인 여자 선생님이 3등급이었다. 등급이 낮을수록 업무량과 수업시수는 많고, 월급은 등급에 따라 5~60만 원씩 적게 받았다. 특히나 한국인 여자 선생님은 스트레스가 많은 학부모 상담업무를 제일 많이 떠안고 있었다. 

 

일은 가장 많이 하는데, 보상은 커녕 월급을 100만 원이나 더 적게 받는다니? 그러나 아무도 그 구조에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고, 나도 일하는 게 처음이라 그게 문제인 줄도 모르고 '원래 그런 것'이라 받아들였다. 이 문제는 계속 곪아 들어갔다. 여자 선생님들은 최저시급도 되지 않는 월급에 1년을 못 버티고 학원을 떠났고, 원장은 계속해서 대학을 갓 졸업해 물정 모르는 파릇파릇한 새 선생님을 싼값에 고용했다.

 

나는 이 월급 등급제에 대해 알고 나서 거의 일년을 고민하다 항의했다. 이후 '계약서에 적힌 비밀 유지 조항을 지키지 않은' 이유로 해고되었다.

 

 

 성희롱 지적하는 것도 안 돼

 

강사로 일하려면 꼭 '범죄경력증명서'를 떼서 제출해야 한다. 이 증명서에 아무런 전과 경력이 없어야 교육 일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학원을 운영하는 대표원장은 그런 증명서가 필요 없다. 

 

내가 있었던 학원의 대표원장은 성범죄 관련으로 2번이나 기소당했다. 그래도 계속 학원에 눌러앉을 수 있었다. 원래 하고 있던 원장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표라는 직함을 달고 출근했다.

 

우리 선생님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표가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대표는 선생님 업무에 간섭하지도 않으니 굳이 부딪힐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소한 직장에서 포르노는 보지 말았어야 했다. 유치원생부터 중학생들이 왔다 갔다 하는 그 학원에서 대표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대놓고 학원 컴퓨터로 야동을 봤다. 그 일은 그냥 선생님들만 아는 일로 덮어지고 무마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대놓고 만지거나 여선생님들을 슬쩍 건드리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당시에는 나도 어렸기 때문에 그게 성희롱이라 생각을 못하고 싫은 티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학생들은 짜증을 내며 '건드리지 마요!!'라고 말할 수라도 있었지. 그러다 C라는 미국인 여선생님이 그걸 발견하고는 벌컥 화를 냈다.

 

"그렇게 만지면 안 돼요!!! 그거 성희롱이에요!"

 

지금까지 아무도 대표에게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C가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성희롱이라는 말을 꺼냈다. C는 미국인이었지만 한국어를 꽤나 잘했는데, 그녀가 한국어를 할 때마다 대표는 발음이 우스꽝스럽다며 웃어댔다.

 

이번에도 대표는 멋쩍게 웃으면서 반박하지 않고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나중에 C에게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녀가 시원하게 웃으며 답장을 했다.

 

"Teachers got teachers' back. (선생님끼리 돕고 뭉쳐야지.)"

 

이 한 마디는 아직도 내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C는 너무 나댄다'며 남자 선생님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눈뭉치처럼 커져서 결국은 선생님들끼리 모이면 C선생님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욕하지 말라고 끼어들자, "쌤도 C하고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 C는 미국인이니까 아무도 못 건드리지."라는 핀잔만 들었다. 나도 'Teachers got teachers' back' 하고 싶었는데, 무력감이 들었다.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이 책을 보면 "저는 최선을 다했던 것밖에 없는데요. 제가 뭘 더 할 수 있었던 거죠?"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 말처럼, 다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뿐인데, 왜 상황이 그 지경으로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 억울함과 불안감을 겪으면서, '원래 이런 것'을 받아들이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내 이전의 사람도 겪었고, 나도 겪었고, 나의 다음 사람도 겪을 '원래 이런 관행들'... 내가 그 틀 안에 있을 때에는 '원래 이런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다. 화가 나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들였다. 

 

불합리한 행태를 원래 그런 것이라 여기며 참고 인내하며 일할지, 아니면 그 부조리를 지적하고 따라오는 결과를 감수할지는 개인의 판단이다. 누가 잘못되었고 누가 잘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덮어두는 게 좋은 일이라고, 잘리기 싫으면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를 듣고 계속 참기로 결심한다면, 그래도 과연 자기 자신의 판단일까? 사회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인내하는 것이 내 결정인지, 아니면 그것이 기득권이 교묘하게 주입한 판단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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