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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오전 휴가를 내고 듀픽센트 연구를 도와주러 갔다

by 밀리멜리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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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피부과에 가야하기 때문에 오전 휴가를 냈다. 상사인 쟝에게 병원예약이 있어서 가야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쟝, 수요일 오전에 병원에 가야 하는데요."

"응, 응, 갔다 와."

"어, 그러면 출근부에 기록 어떻게 해요?"

"찾아보면 코드가 있을 거야. 거기 코드대로 기록하면 돼. 풀타임 페이 받고 싶으면 추가적으로 더 일해도 되고, 아니면 말고..."

 

난 어떻게 병원에 간다고 말해야 하나 좀 망설였는데, 쟝은 정말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회사 주변 풍경

 

아무튼, 나는 아토피가 있는데 캐나다 병원에서 듀픽센트(듀필루맙)라는 약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 이 약을 쓴 지 거의 1년이 되었는데, 정말 많이 나았다. 이제 1년에 한번만 가면 되지만 아토피 전문의인 닥터 잭이 듀픽센트를 쓴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한다기에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닥터 잭 덕분에 아토피도 나았고 닥터가 연결해준 재단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닥터 잭이 하는 연구라면 언제든 돕고 싶다. 

 

접수하자마자 10장짜리 설문지를 주고 작성하라고 한다. 한창 답을 적고 있으려니 피부과 레지던트가 와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질문하고 답변하고, 내 피부상태를 점검했다. 조금 있으니 닥터 잭이 왔다.

 

"잘 있었어요?"

"네, 덕분에 잘 있었어요. 상태도 많이 좋고요."

"잘됐네요. 그래요, 조금 붉은기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좋네요. 이번에 하는 연구 프로젝트가 있는데, 좀 도와줄래요?"

"당연하죠. 그것 때문에 왔어요."

"레지던트한테 들으니, 직장을 구했다면서요?"

"네, 덕분에요. 피부가 많이 나아서 밖에도 잘 나가고, 직장도 구했어요."

"잘됐네요. 아, 우리 연구 파트너 알렉산드라를 따라가면 돼요. 알렉산드라도 듀픽센트로 치료받았어요."

"네, 그럴게요."

 

알렉산드라를 따라서 병원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스태프만 들어갈 수 있는 연구실이 가득한 곳이었다.

 

"닥터 잭이 그러는데, 알렉산드라도 치료받았다면서요? 그리고 여기서 연구진으로 일하는 거예요?"

"아, 맞아요. 난 의료 전공이 아니라 순수과학 전공이긴 한데, 닥터 잭 선생님께 치료받고 연구 파트너로 일하고 있어요.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재밌어요."

"와, 대단하네요."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병원이 엄청 복잡하죠? 완전 미로예요."

 

미로같은 병원 복도

 

알렉산드라 말대로였다. 병원 복도가 여러 갈래로 나뉘었고, 복도의 여러 문 중에서 하나씩 골라서 지나치다 보니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를 지경이었다.

 

"와... 정말 복잡하네요. 하나도 모르겠어요."

"하하하, 나도 사실 마찬가지예요. 연구실이랑, 사무실이랑, 피부과밖에 몰라요. 처음엔 얼마나 길을 많이 잃었는지!! 이 스태프증을 목에 걸고 다니면 사람들이 다 나한테 길을 묻는데, 나도 모른다니까요!"

"정말 그럴만 하겠어요."

"이 병원이 엄청 디자인도 모던하고 멋있죠? 병원 지어질 때 돈이 엄청 많이 들었대요."

"그렇다고 들었어요."

"하도 돈이 많이 들어서, 결국엔 건축가한테 줄 돈이 부족했대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어떻게 했는데요?"

"건축가 대신 엔지니어한테 설계 마무리를 부탁했대요. 디자인 보면 정말 엔지니어의 디자인이다 싶지 않아요?"

"오, 정말 그러네요."

 

말 그대로였다. 병원은 엄청 모던한 디자인으로 꾸며지긴 했는데, 길이 쓸데없이 복잡하고 회색이나 흰색이 많이 쓰였다. 엔지니어가 설계하면 건물이 이렇게 되는 걸까 ㅋㅋㅋ

 

건축가 대신 엔지니어가 설계한 병원 건물

 

미로같은 복도를 지나, 연구실에 피를 뽑으러 갔다. 듀픽센트를 맞고 회복된 환자들의 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연구 프로젝트라고 했다. 갈색 히잡을 쓴 연구자가 주사를 놓았다.

 

"연구를 도와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소정의 현금을 드려요. 싸인하시겠어요?"

"네."

"바늘 무섭지 않죠?"

"괜찮아요."

 

싸인을 하니 바로 편지봉투에 담긴 $25 현금을 받았다. 흠, 나쁘지 않은데?!

 

내 피를 담은 유리병이 7개는 되었다. 아이고... 피를 다 뽑으니 살짝 어지러웠다. 

 

"다 됐네요. 기분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런데 나가는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당연하죠. 제가 같이 나갈게요. 여기 정말 복잡해서 길 잃기 쉽거든요."

 

알렉산드라 덕분에 진료와 연구를 모두 마치고 나왔다. 아직도 살짝 힘이 없어서 뭔가 간절히 먹고 싶었다. 이 병원 식당밥은 정말 맛있어서, 찾아볼 것도 없이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메뉴는 송어와 매시포테이토, 야채와 주키니 수프다. 사실 다 맛있었지만 주키니 수프가 특히 맛있었다!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맛이 정말 일품이다. 심지어 우리 옆에 앉은 사람들도 수프에 감탄했다.

 

"여기 수프 진짜 맛있는데?"

 

이 말을 엿듣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식당밥을 주문하지 않고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다른 옆사람도 솔깃했던 모양이다.

 

"정말? 나도 어디 한입 줘봐."

 

하더니 주키니 수프를 한입 얻어먹는다. 캐나다 사람들이 한 음식을 나눠먹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는데, 그 정도로 맛있는 수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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