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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오믈렛 레시피를 준 어느 테크니션

by 밀리멜리 202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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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라서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 인사를 안했는데, 여기서는 인사를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문화도 그렇지만, 첫 출근 연수에서 배운 게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기관이라도, 말없이 지나치지 말고 인사하는 게 예의라는 것이다. 내 안의 유교걸이 갑자기 나타나서 낯가림도 잊게 만든다. 그렇게 인사하다보니, 점점 직장에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치만 인사를 하고 나서 스몰토크는 어렵다. 원래 말수가 없는 편이고, 상대방의 프랑스어가 알아듣기 어려우니 스몰토크가 어렵다. 어렵고 엄청 어색해도 뭐라도 말을 해보려고 노력하니, 프랑스어도 늘고 일하는 재미도 생긴다.


오늘 아침에는 떼아가 재택근무라 옆 사무실이 비었는데, 가구 설치하는 테크니션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봉주! 오늘 어때요?"
"봉주! 좋아요, 고마워요. 이 사무실이 비었네요. 들어가서 정비해야 하는데..."
"맞아요. 오늘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가 재택근무라... 저도 열쇠가 없는데 어떡하죠?"
"아, 걱정 마요. 시큐리티 불렀으니까. 내 일이 그래요. 기다려야지."

이 부인은 며칠 전에 이사벨의 서랍을 설치해주신 분이다. 그런데 말이 너무 빨라서 못알아듣겠어...! 자기 이름을 말했지만 금방 까먹어 버렸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머리가 희끗희끗하니 최소 50대가 되어 보인다. 사무실의 가구를 설치하고 무거운 걸 옮기는 테크니션은 몸을 써야 하는 힘든 일이지만, 그 나이에 여성으로 이런 일을 척척 해내는 게 정말 멋있다.

"기다려야 하면 차라도 한잔 하실래요? 물 끓여 놨거든요."
"아, 괜찮아. 요즘 건강 식단 중이거든. 이게 중국식이던가... 아니, 일본식이었던 거 같아. 아침에 일어나서 10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 방법이야. 그러니 차는 괜찮아, 그래도 정말 친절하네."
"그랬군요. 저는 요즘 커피 줄이려고 차를 마셔요."

 

좋아하는 차들은 다 먹고 이것만 남았네


아주머니가 뭐라뭐라 쉬지 않고 말했지만 프랑스어가 너무 빨라서 못 알아들은 채 그냥 끄덕끄덕했다. 아마 아침에 커피를 많이 마셨는데, 그러다가 식단법 시작하면서 줄였다 정도인 것 같다. (이런 걸 대충 눈치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신기하다) 그러다 나에게 낫또를 먹어봤냐고 묻는다.

 

"차도 건강에 좋지. 그거 들어봤어? 낫또?"
"낫또요? 음, 한번 먹어본 적 있어요. 저는 한국 사람이거든요. 한국이랑 일본이랑 가까워서, 여행갔을 때 한번 먹어봤죠."
"먹어보니 괜찮아?"
"저한테는 좀 안맞았어요. 그냥 그래요. 몸에 좋다고는 들었는데..."
"맛이 어때?"
"좀 씁쓸하고 짜요. 그리고 끈적끈적해요."
"짜고 씁쓸하고... 그런 것 같더라고. 그건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글쎄요... 아시안 마켓 가면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발효된 건 몸에 좋다던데. 전 김치를 좋아해서 낫토는 잘 모르겠어요."
"아, 그래, 김치! 김치는 어때? 김치는 맛이 좋아?"
"전 어릴 때부터 평생 먹어서 그냥 좋아요. 없이는 못살죠.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좀 짜고 매울 수도 있어요. 그래서 밥이나 다른 채소랑 같이 먹어야 해요. 감자랑 먹어도 좋아요."

이렇게 이야기 하다보니 시큐리티가 와서 문을 열어줬고, 곧 가구 설치하는 일을 하러 갔다. 20분쯤 뒤, 일이 다 끝났는지 나에게 와서 뭔가를 묻는다.

 

사무실 복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야, 룰로 드 프랑땡 좋아해?"
"음, 아니요...? 모르겠는데. 그게 뭐죠?"
"으음... 슈퍼에서 파는 쌀로 된 파이, 아니 이게 파이가 아니라 종이같은 건데. 쌀로 만들어서 물에 잠깐 담궈 먹는 거 있잖아."

 

모른다니까 직접 그림까지 그려주심ㅋㅋㅋ


"아, 아! 스프링 롤!! 알아요. 중국 식당에서 봤어요."
"그래, 그걸 만드는 라이스페이퍼, 그걸 사서 물에 15초만 담그면 금방 말랑해지잖아. 접시에 놓고, 네가 좋아하는 야채나 새우 같은 거 넣으면 금방 만들어. 정말 쉬우니까 해봐."
"오, 정말 도시락 싸기 좋겠네요."
"그래그래, 이 연습장 종이 써도 되지? 내가 별 세개짜리 오믈렛 레시피도 줄게. 일단 프라이팬 위에 그 라이스페이퍼를 놓고, 그 위에 계란 2개를 넣어.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재료를 또 넣으면 좋지. 치즈도 맛있고, 아니면 채소..."

 

직접 그려주신 슈퍼 쉬운 오믈렛 레시피

"라이스페이퍼를 안 적시면 바삭바삭하고, 샌드위치처럼 먹을 수 있어. 슈퍼 쉽지? 아침에 시간 없을 때 후딱 만들 수 있어."

"우와, 해봐야겠어요!"

 

프라이팬이랑 라이스페이퍼 직접 그려준 거 너무 귀엽다. 

 

게다가 오늘 대화에서 새로 알게된 발음도 있다.

 

바로 계란!!

 

쉬운 단어인데 지금까지 어떻게 발음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계란은 프랑스어로 oeuf라고 쓰는데, 특이하게도 계란 하나(un oeuf)와 계란 여러개(des oeufs)의 발음이 다르다.

 

계란 하나: un oeuf [앙^엎]

계란 여럿: des oeufs [데쥬으]

 

한글 표기로 정확한 발음을 표현하기 어렵지만, 내 귀에는 대략 이렇게 들린다. 왜 이렇게 다른 거지...?  

 

아무튼 새로 배웠군!! 오믈렛 레시피도 배우고, 계란 발음도 배우고! 일석이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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