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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친구의 진로 고민을 들어주는 밤

by 밀리멜리 2022.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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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지나서 자려고 누웠는데, 핸드폰 알림이 계속 울렸다. 결국 잠에서 깨어 화면을 보니, 내 오랜 친구 레미의 문자였다. 무슨 고민이 있나...?

레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몬트리올에 도착한 친구다. 비서학교 첫날 같은 반에서 만나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함께 비서학교를 졸업했지만, 사실 우리 둘 다 프랑스어가 너무 어려워서 정말 비서로 취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일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레미는 원래 피아노를 전공해서, 이곳에서도 피아노 선생님으로 일을 금방 구했다.

 

그러다 얼마 전, 치과 클리닉에서 비서로 취직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침에는 클리닉에서 일하고, 저녁과 주말에는 피아노 선생님을 계속 한단다. 투잡이라니! 우와...

다 잘 되는 줄 알았는데, 레미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다. 음악학교와 클리닉에서 풀타임 제의를 받았는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면 투잡이 더 힘들 것 같은데, 그녀는 한 가지 일을 선택하는 게 더 힘들었던 모양이다.

한참 고민상담을 해주다가 불현듯 레미의 고민이 내가 항상 하던 고민과 비슷하다는 걸 발견했다. 우리 둘 다 최선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너무 열심히 하다 지치는 경향이 있다.

레미는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실수할 것 같아"라는 말을 반복했다.

"실수라니, 무슨 실수?"
"직장에서, 중요한 걸 잘 못 알아들으니... 용어도 너무 어렵고. 오늘 벌써 실수한 것 같아."
"실수하는 게 당연하지! 나도 얼마나 실수 많이 하는데. 지금도! 그치만 다 수습 가능해. 그냥 일시적인 거야. 그래도 정말 이해가 간다. 나도 실수할까봐 걱정해서 잠 못자고 그럴 때 있었거든." 

이렇게 말해놓고, 나도 내 자신을 되돌아봤다.

말은 쉽다. 정말 말은 쉬운데...

 

레미에게는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고 했지만, 사실 오늘도 나는 직장에서 실수할까봐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이런 건 성격 탓일까? 아니면 신입이라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 일 계속하는 게 좋은 걸까?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음 나라면..."

사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거의 30분동안 레미는 클리닉 일이 걱정되고 어렵다는 말만 했으니까. 

"나라면 음악 학교 일을 계속 하겠어."

순식간에 이 말풍선에 하트표시가 붙었다. 내심 레미도 음악 학교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저 그 마음을 인정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왜?"
"왜냐면... 지금까지 말한 걸로 봐서 클리닉에서 너무 스트레스 받고 있는 것 같거든. 그리고 너 음악하는 걸 정말 좋아하잖아. 그게 너의 열정인 것 같아. 피아노 칠 때 행복하다며. 가르치는 것도 즐겁고. 물론 클리닉에서도 배울 게 많고, 특히 프랑스어가 많이 늘 테지만... 그 일하면서 네가 가끔이라도 즐거워하는지는 모르겠어. 

비서 일은 나중에라도 하고싶다면 다른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나도 일하기 전엔 몰랐는데, 지금 인력 부족 상태라서 일할 기회가 널려있어!
물론 선택은 네가 하는 거지만, 어쨌든 지금 보이는 게 유일한 선택은 아니야. 지금 하나를 놓치더라도 끝이 아니야. 정말 많은 기회가 있으니까 걱정 마."

이 말을 듣고 나더니 레미는 이제 마음을 정했다고 말했다. 중요한 인생의 결정인데, 내가 좋은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친구같은 사람이라면 어딜 가도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건 확신한다. 진심으로 내 친구가 행복한 길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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