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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봉주! 간단한 인사의 힘

by 밀리멜리 2022.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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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특히나 주변의 눈길이 나에게 집중되는 걸 견디지 못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선생님에게 말을 걸지 못해서, 화장실 가고 싶어도 꾹 참고 끙끙거린 기억이 있다. 

조금 더 자라고 나서도 별로 변한 게 없었다. 학교 친구를 사귀더라도 먼저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줘야 말을 시작했고, 발표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발표가 필수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억지로 꾸역꾸역 발표를 했는데, 억지로 했으니 결과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너무 작게 나왔다. 나는 내 목소리가 작은지도 모르겠는데, 나오는 피드백마다 목소리를 크게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내 목소리가 작다는 걸 알았다.

그런 내가 어쩌다가 매일매일 이목이 집중되어야만 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해서? 남들보다 좀 늦게 사회스킬을 늘려 나갔다. 매일 하다보니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겨 농담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타고난 천성이 있으니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누군가에게 말을 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친해지는 것보다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몬트리올에서 직장을 구하고, 첫 출근 연수날 봤단 짤막한 비디오 클립이 기억난다. 직장 복도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면 짧게라도 봉주! 하고 인사를 건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 주변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인사를 하고, 좀 더 친해지면 이름을 묻는다. 나도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출퇴근 때 보는 시큐리티는 나에게 무릎을 살짝 굽히는 기사도 인사를 해 주고, 정수기 앞을 청소하는 분은 나를 마담 떼라고 부른다. 내게 마담 떼라는 별명이 붙은 사연은 이렇다.

"봉주! 너 매일 여기 물 뜨러 오네. 커피 마실 거야?"
"봉주! 사실 차 끓이려고. 요새 커피는 조금 줄이려고 노력 중이라서 말이야."

이런 식으로 매번 가벼운 인사를 건넸는데, 그러다 보니 내 별명이 '차'라는 뜻의 마담 떼(Madame Thé)가 되었다.

맘에 드는 별명, 마담 떼


어제 우리 복도를 청소해 주는 사람에게 봉주! 와 집에 갈 때 '본수와레'라는 작별인사를 건넸는데, 그 사람이 너무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정말 고마워. 오늘 하루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인사를 받았어. 오늘 내 하루를 좋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아! 그랬구나. 운이 없었네. 그렇다니 나도 고마워. 안녕!!"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 그 사람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건넨 인사가 유일한 인사였다니... 외로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내 인사가 힘이 되었다니 기쁘다. 좀 더 스몰토크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더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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