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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유선경 작가의 감정어휘 독후감

by 밀리멜리 2022.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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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읽은 책은 유선경 작가의 '감정 어휘'이다. 불안하거나 답답함, 짜증 나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 고민을 덜어주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런 감정이구나!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어떤 일이 내 맘대로 잘 안 되거나 어려운 방해물이 생겨 답답하고 힘든 마음이 들 때, 우리는 "짜증 나!"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더 깊게 마음을 들여다보면, 짜증 난다는 말속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숨어 있다. 그 감정을 어떻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사실 '짜증나' 속에 숨겨진 감정은 분노하거나 불안한 것일 수도 있고, 겁먹은 것이거나 지루한 것일 수도 있다. 자기 비하, 적대감, 고단함, 좌절 등에 타격받은 것일 수도 있다. 

 

짜증나! 의 원래 감정

최근에 나도 너무 화가 나서 결국 소리를 질렀던 적이 있다. 그렇게 화를 내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냥 짜증이 아니라 생리로 인한 호르몬 작용, 밥을 못 먹게 하는 데에서 오는 슬픔, 상실, 허기, 좌절감 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나니 바로 화가 풀렸다...)

 

화가 났을 때 '이 분노의 원래 감정은 뭘까?'하고 잠깐 생각해 보니 금방 그 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분노의 감정을 깨닫고 원래 감정에 이름 붙이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화가 나는 이유는?

 

 

 하이브리드 감정

 

인간의 감정은 신기하다. 감정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합쳐지기도 하고, 하나의 감정이 또 다른 감정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희망 = 기대 + 신뢰
자부심 = 분노 + 기쁨
부러움 = 슬픔 + 분노
죄책감 = 기쁨 + 공포
경멸 = 혐오 + 분노
염려 = 기대 + 공포
수치심 = 공포 + 혐오
절망 = 공포 + 슬픔
우월감 = 분노 + 신뢰
애증 = 신뢰 + 혐오

감정 어휘 中. 유선경.

 

가장 첫 챕터에 나오는 이 대목에 밑줄을 치고 정말 그런가? 하고 잠깐 생각해 보았다. 

 

'염려'라는 감정은 어떤 대상이 잘못될까 봐 하는 조바심, 공포에서 오는 감정이지만 애초에 그 대상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느끼지 않을 감정이다. 나는 일에서 실수할까 봐 공포를 느끼지만, 애초에 내가 잘할 거라는 기대가 없다면 그런 공포를 느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 부모님이 나를 염려하는 이유는 나를 사랑해서 내가 잘 살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렇지 못할까 봐 공포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SNS를 할 때 자주 느끼는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나의 처지에 대한 슬픔과,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남들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를 보면 이런 가사가 있다.

 

장기하 - 부럽지가 않어 

 

아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뭐

아니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아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부럽지가 않어 中. 장기하.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한다.


부러우면 슬픔과 분노가 느껴지는데, 그 분노를 자랑함으로써 표출하고, 자랑으로 우월감(분노+신뢰)을 느끼면서 슬픔을 억누르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억눌린 슬픔은 해소되지 않아 또다시 부러운 상황이 생겨나고, 자랑으로 이를 억누른다. 계속해서 부러움-우월감의 고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부러워하고 자랑하는 모양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다고 '나는 부럽지 않다, 부럽지 않다'라고 되뇌어 봐야 부러움으로 생긴 슬픔과 분노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이미 부러움을 느꼈는데 어떻게 장기하처럼 "부럽지가 않어~"하고 넘길 수가 있단 말인가?!

 

감정은 옳고 그름이 없다.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옳은 게 아니고,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그른 게 아니다. 감정은 그냥 생겨나는 것,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부러움이나 죄책감, 수치심 등을 느꼈다고 해서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돼!'하고 억누를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특히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있는데 인지하든 못 하든 약점이거나 상처일 것이다. 과하게 자신감 넘치거나 공격적인 것조차 아무렇지 않은 척의 과장이다.

감정 어휘 中. 유선경.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은 본능적인 행동이다. 상처를 감추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은데?

 

그러나 이는 껍데기를 쓰고 다니는 것과 같다. 안전하지만 외부에서 오는 신호를 받지 못하고 감정을 억누르면서 어떤 느낌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그저 뭉뚱그려서 기분이 좋거나 나쁜 것을 "대박!"과 "짜증 나!"정도의 말로만 표현하게 된다. 

 

이 감정을 사람들에게 표현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가장 친한 친구, 낮이나 밤이나 붙어 다니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사람. 신뢰하기 힘들 때도 있고, 내 뒤통수를 칠 때도 있지만 적어도 비밀을 누설할 일은 없는 친구,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의 감정을 나 자신에게만은 드러내자. 내 감정을 충분히 인정해 주어야 한다.

 

 

 예민한 감정 롤러코스터

 

외부에서 자극을 더 많이, 강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예민함이라고 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자극에 대응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쉽게 지치고 피로해질 수 있다. (...)

예민한 사람은 슬픔이나 불안, 지루함, 불신, 분노, 좌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지만 한편으로 평안, 기쁨, 기대, 신뢰, 희망 등의 긍정적인 감정 또한 더 많이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괴로움도 두배, 즐거움도 두배랄까.

감정 어휘. 유선경.

 

이 대목을 읽고 어쩌면 예민한 사람의 감정이란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공원에 가서 잔잔한 회전목마를 타면 무서운 감정도 없지만, 짜릿한 느낌도 없다. 그러나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를 탄다면, 공포감과 짜릿함이 엄청나게 느껴진다. 

 

그래서 다음에 힘든 일이 생기면,  그 힘들었던 만큼의 즐거움이 나를 기다리겠지 하고 생각하려 한다. 놀이기구처럼 짜릿한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서 내가 상황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나도 최근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었다. 바로 회사에서 열쇠 꾸러미를 다른 사무실에 놔 두고 잃어버렸다고 착각했을 때였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고 혹시라도 열쇠꾸러미를 전부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에게 한 소리 들을까 패닉이 왔다. 10분 뒤 겨우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서야 안도의 한숨이 푹 하고 올라오며 달콤한 평온을 되찾았다. 

 

애초에 회전목마 탄 듯이 차분하게 왔던 곳을 되짚어 봤더라면 느끼지 않았을 감정의 롤러코스터였다.

 

 

 마치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내 감정에 대해서 제대로 느끼지 않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은 사는 동안 수많은 아픔과 슬픔을 견디는데, 그를 무시하고 견디기보다는 감정을 잘 살피고 세밀하게 표현하면 그 해결방법을 모색할 수 있음을 배웠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한의학에서는 "분노가 심하면 간이 상하고, 우울함이 심하면 폐가 상하고, 기쁨이 심하면 심장이 상하고, 공포가 심하면 신장이 상하고, 골똘히 생각하면 비장이 상한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감정이 너무 과하게 되기 전에 잘 조절해야 한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은 잘 참고 억누르고 게 아니고, 반대로 잘 분출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은 자극과 내 감정 반응 사이에 '생각'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충동적으로 좋으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회피하는 게 아니라, 닥친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세부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앞으로 벅차오르는 힘든 감정을 느낄 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1.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2. 왜 이런 감정을 느끼나?

3. 이 감정의 더 세부적인 이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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