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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후감 - 당연함을 잃고 나서 얻는 것들

by 밀리멜리 2022.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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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처음에는 지루한 에세이라 생각했는데 꼭 참고 마지막까지 읽으면 쾌감이 터지는 책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고,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해 준 책이기도 하다.

 

제목이 무척 특이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뭔 소리야 싶지만, 끝까지 읽다 보면 정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 하고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누군가가 이마를 찰싹 한 대 친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우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혼자서 머릿속으로 질문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럼 우리가 아는 고등어, 장어, 참치는 뭐야? 물에 산다고 다 물고기인가? 그렇담 물 밖에서도 숨쉴 수 있는 망둥어는? 개구리는? 거북이는? 고래는? 물새는? 새우는? 오징어는? 해초는? 잠수하는 인간은? 아, 정말 물고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분류학적으로 우리가 '물고기를 정의할 수 없다'라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허상을 두고 뭉뚱그려 그것을 물고기라고 칭하고, 물고기라고 배우도록 만들어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닐까.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을 이해하고 있다는 인간의 오만함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이름붙이기를 늘 잘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붙인 이름들에 잘못된 것들이 많다. "노예"는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유를 누릴 가치도 없는 존재인가? "마녀"는 화형을 당해 마땅한 존재인가?

 

 

 이름을 붙이는 이유

 

하지만 왜 인간은 대상에게 이름을 붙이고 싶어할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시, 꽃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어쩌면 인간은 이 혼돈의 세상에서, 알 수 없는 대상에게 이름을 붙여 '모른다'라는 불안감을 낮춘 걸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에게 이름을 붙이는 이유도 그와 마찬가지 아닐까. '무엇'이 되고 싶고, 그래서 누군가가 바라봐 주고, 불러주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우리 여기서 모두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인생에 아무런 의미도 없어.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는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네가 토양 속에서 환기를 시킬 수 있을까? 목재를 갉아먹어 분해 속도를 높일 수 있을까? 나는 네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 면에서 넌 지구에게 개미 한 마리보다 덜 중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 너 좋을 대로 살아."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룰루 밀러가 일곱 살 때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다. 어린아이가 듣기엔 정말 차갑고 허망한 말이지만, 왜 인간이 자연대상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나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중요하지 않은 거대한 우주, 그 혼돈의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의미를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물고기를 잃고 나서 얻는 것

 

물고기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 독자에게도 충격적이지만, 물고기를 평생동안 연구해 온 학자들에게는 더욱 충격스러우며 고통스러운 일이다. 저자인 룰루 밀러조차도 충격에 빠져 며칠을 고민한다. 이를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저자는 물고기를 별에 비유한다. 물고기를 포기하는 것은 중세 시절 별을 포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사람들에게 별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무시무시한 일이다. 자신들이 너무 작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가 별을 포기했을 때 이단이라는 판결을 받았고, 갈릴레오도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 일은 동시에 야망과 발명, 공학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별을 포기한 덕분에 수세대에 걸쳐 직관의 반대편으로 보낼 배를 출항시키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 황당무계한 꿈 덕분에 지금 우리는 달에 닿을 수 있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러할 것이다. 그 사실을 사람들은 각자 다르게 받아들인다. 허망함, 치명적인 냉기, 인간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발밑의 단순한 것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연민, 인간이 자연계의 정점에 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다른 생물에 경멸적인 이름을 붙인다는 사실... 물고기라는 커튼 뒤에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가 존재한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 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필로그 중.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물고기가 존재한다, 그 당연하다고 여겨온 개념을 파괴하면 그 이후 무한한 가능성의 좋은 것들- 그 개념의 이면이 흘러 들어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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