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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레미제라블 독후감 - 쟝발쟝 양심의 가책과 불안감

by 밀리멜리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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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짬짬이 틈나는 시간에 레미제라블을 읽고 있다. 레미제라블이 두껍다 두껍다 이야기는 들었어도, 정말 이렇게 두꺼운 줄은 몰랐다!  워낙 내용이 방대해서 흔히 알고 있는 레미제라블의 쟝발쟝 이야기는 한참 뒤에나 나온다. 
 
쟝발쟝은 빵 하나 훔친 걸로 20년 가까이 감옥생활을 한다. 석방이 되었지만 감옥에 갔다는 꼬리표 때문에 어디서나 쫓겨난다. 그러다 흘러흘러 미리엘 주교의 집에서 은식기를 훔치고, 잡힐 뻔한 순간에 미리엘 주교가 그를 도와주며 은촛대까지 선물한다.

 

여기까지가 어릴 적 보았던 동화의 내용인데, 그 이후 쟝발쟝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면 더 흥미롭다.

 

쟝발쟝은 은식기를 들고 가던 도중, 조그만 소년이 갖고 놀던 은화가 또르르 자기 발밑까지 굴러들어온 걸 본다. 이 은화를 발로 밟고 소년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결국에 소년은 돈을 뺏기고 울어버린다.

 

쟝발쟝의 영혼이 감화된 것은 바로 이 순간 이후이다. 자신이 어린아이의 돈을 훔쳤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쟝발쟝은 뉘우치고 그때부터 베푸는 삶을 살게 된다. 의외로(?) 장사에도 재능이 있어서 부자가 되고, 번 것보다 더 많이 베풀어서 존경을 받고 시장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부와 명예를 얻었으니 잘 먹고 잘 살면 좋으련만, 그렇다면 레미제라블이 아닐 것이다.

 

마들렌이라는 가명을 쓰고 시장이 된 쟝발쟝은 자베르 경감을 마주친다. 쟝발쟝이 괴력을 지닌 죄수였던 걸 기억하는 쟈베르는 똑같이 힘이 센 마들렌 시장을 의심하여 고발한다.

천만다행으로, 쟝발쟝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죄수가 이미 감옥에 갇혀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제 마들렌 시장이 죄수였다는 의심도 사라졌으니 덮어두기로 결심하지만, 이때부터 쟝발쟝의 진짜 고뇌가 시작된다. 이걸 덮어두자니 쟝발쟝은 도무지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그가 느끼는 불안감과 양심의 가책을 자세히 묘사하는데, 그게 한 챕터가 넘는다.

 

생각이 하나의 사념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은, 바닷물이 해변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음과 같다. 선원은 그것을 조수라 하고, 죄인의 내면에서 생기는 그 현상을 가리켜 가책이라고 한다. 신은 대양의 물결 솟구치게 하듯 인간의 영혼을 뒤흔든다.

그는 듣고 싶지 않았을 것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에게 '생각해!' 라고 명령하던 신비한 힘에 이끌려서였다. 그 신비한 힘이란, 이천년 전에 다른 또 하나의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걸어가!' 라고 명령하던 그 힘이었다. 

-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이천년 전에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 아마 예수를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싶다. 빅토르 위고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의식을 신이라고 일컫는다. 이 책에서도 '신이란 바로 인간의 의식이다'라는 구절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충동적 불안감 때문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서 출입문의 빗장을 질렀다. 그러고도, 혹시 무엇이 들어오지 않을까 불안해하였다.

잠시 후 촛불을 껐다. 불빛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누가 자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란 말인가?

애석한 일이었다. 그가 문밖으로 내치려 하던 것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그가 눈을 멀게 하려던 것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의식이었다. 

그의 의식, 다시 말해 신이었다.

-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의식이 바로 신이라니! 이 부분을 오늘 아침 버스 안에서 읽었는데, 계속 머리에서 맴돈다.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고, 더 나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의식이 바로 신이 아닐까 싶다. 불안감이라는 불쾌한 감정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개선하니 말이다. 

 

양심의 가책과 불안한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고통스럽고 불안한 감정을 떠올려 보았다. 그런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멀리하고 싶고, 외면하려고 해도 마음이 기뻐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런 나쁜 감정과 스트레스는 더 나은 행동을 만들어 가기 위해 더 높은 의식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불안한 감정도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말은 아마 이런 의미에서인가 보다.

 

 

영화나 동화에서 캐치하지 못했던 깊은 감정과 철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의식과 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다니...

 

미리엘 주교나 팡틴의 이야기에서도 밑줄 쳐놓은 부분이 많은데, 아직도 1/5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다룰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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