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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독후감

by 밀리멜리 202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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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다. 헤르만 헤세는 독일계 스위스인인데, 얼핏 생각하면 불교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인물이다. 서양 관점에서 바라보는 불교와 싯다르타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져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어, 특이하네?' 하고 느낀 부분은 바로 헤르만 헤세가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한 인물을 두 캐릭터로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서양의 철학적 사유는 둘로 나누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 서양식 사고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도 나타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고타마는 위대한 정신적 스승이자 깨달음을 얻은 부처, 싯다르타는 구도자의 삶을 경험하는 인간으로 표현된다. 인간인 싯다르타는 붓다 고타마를 질투하기도 하고, 존경하기도 한다.

 

이렇게 고타마와 싯다르타가 분리되었기 때문에, 싯다르타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욱 도드라진다. 싯다르타와 고타마, 두 사람이 가장 다른 점은 감정에 대한 태도이다. 고타마는 감정과 이승의 번뇌를 초월했으며, 윤회의 바퀴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인간 세상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한다. 허영, 자만심, 사랑, 향락, 후회, 아픔, 상실감, 괴로움 같은 인간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싯다르타는 어떤 수행을 했을까.

 

 

 오만한 수행자 싯다르타

 

잘생긴 브라만의 왕자, 싯다르타는 명석하고 슬기로워서 일찍이 아트만 합일을 깨달았다. 이후 불문의 수도자가 되어서도 빠르게 배워 엄청난 초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는 명상을 하고 감각을 비워 자아를 초극하는 방법을 배웠다. 호흡을 조절해 심장을 멈추게 하고,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법을 배웠다.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와 해오라기가 되기도 하고, 돌도 되었다가 썩은 고기가 되어 죽음을 겪고, 나무도 되고, 불도 되었다.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지배해 자신의 명령을 따르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은 일시적이었다. 언제나 싯다르타는 해탈을 구하는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싯다르타는 웃음지으며 말했다.

"나는 모르네. 나는 지금껏 술꾼이 되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나, 싯다르타는 침사와 수도의 가운데에서 단지 일시적인 마취를 맛보았을 뿐, 태내에 있는 어린애처럼 도통과 구제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까마득하다는 것, 그것을 알 뿐이야. 오, 고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中

 

공부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싯다르타는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며 우울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고빈다가 부처 고타마의 설법을 들으러 가자고 부추긴다. 고빈다는 고타마의 설법을 듣고 부처에 귀의하기로 하지만, 싯다르타는 설법 속에서 논리적인 허점을 발견하고 고타마와 논쟁하기 시작한다.

 

고타마는 웃을 듯 말 듯 웃음을 지으며 깊이 생각한 것이 훌륭하다 칭찬하고, 너무 지나친 지혜로움과 말을 경계하라고 주의를 준다. 싯다르타는 여전히 말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고타마의 시선과 자세, 웃음과 걸음걸이를 보고 감명을 받는다. 고타마와 헤어진 뒤, 그는 오로지 자아에 대해서만 탐구하기 시작한다.

 

내가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은, 싯다르타가 여전히 내게 낯설고 알 수 없는 존재인 것은, 하나의 원인, 단 하나의 원인에서 유래한다. 즉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불안을 가졌고, 나에게서 도피했던 까닭이었다!

 

 

 사랑과 돈을 얻는 법

 

싯다르타는 아름다운 기생 카마라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먼지투성이 꼬질꼬질한 수행자에 무일푼인 그가 어떻게 카마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는 카마라에게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달라며 스승이 되어달라고 청한다. 카마라는 이미 그에게 머리를 빗고 수염을 깎는 것, 목욕하고 향수를 바르는 것을 가르쳤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웃으며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좋은 옷, 좋은 신,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사랑하는 카마라, 그럼 나에게 말해주시오. 가장 빨리 이 세 가지 물건을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겠소?"
"친구여, 많은 사람들이 그걸 알고 싶어합니다. 지금까지 배워온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의 보상으로 돈과 옷과 신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이 돈을 갖는 방법은 이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당신은 무얼 할 줄 아시나요?"
"나는 사고할 수 있소. 나는 기다릴 수 있소. 나는 금식할 수 있소."

 

카마라는 그의 대답에 실망하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상인에게 소개해 준다. 싯다르타는 장사를 배운 후 곧 한몫 챙기게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카마라와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싯다르타는 카마라를 위해 돈을 벌었지만,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사고하고 기다리며 금식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원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능력이었다. 상인은 곧 싯다르타가 행운의 손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침착하고 초연한 마음가짐, 상대편에게 귀를 기울이고 꿰뚫어 보는 기술은 상인을 훨씬 넘어섰다. 

 

그가 질리도록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모든 것을 쾌락을 얻기 위한 유희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장사를 하다 손해를 봐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공을 가지고 노는 사람처럼 장사를 가지고 놀았다. 하잘것없는 돈, 명예, 쾌락을 위해 서로 헐뜯고 욕지거리하며 괴로워하는 인간들을 보았다. 인간들을 가지고 놀며 구경하고 그들에게 흥미를 느꼈다.

 

 

 고뇌와 깨달음

 

싯다르타는 오랫동안 쾌락을 누렸다. 부자가 되어 안일한 생활에 휩싸였다. 자기 소유의 집, 하인들, 강변의 별장을 갖게 되었고, 사람들은 돈과 조언이 필요하면 싯다르타를 찾았다. 재산이 늘어갈수록 서서히 부에 영혼이 잠식되었다. 세속적인 것에 사로잡혀 결국 사고하는 능력, 참을성, 금식하는 법을 모두 잊게 되었다. 

 

향락에 질려 모든 것을 버리고, 그는 뱃사공의 집에 머물며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는 강에게서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다시금 정신을 회복한다. 그것도 잠시, 평화로운 생활을 하던 싯다르타에게 있었는지도 모르는 카마라와의 아들이 나타났다.

 

 

싯다르타는 인생 처음으로 사랑을 받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는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가 잘못될까 걱정되어 자신의 곁에만 두려고 한다. 사치에 빠지지 않을까, 쾌락과 권력에 눈멀지 않을까 하며 불안해한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아이에게 집착해 억지로 곁에 둘수록 아이는 성질을 내며 반항한다.

 

"스스로 삶을 살고, 스스로 업보를 짊어지고, 스스로 쓰디쓴 잔을 마시고,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으려는 것을 어떤 아버지가 막을 수 있을까요? 친구여, 당신이 어린 아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애의 번민과 아픔과 실망을 덜어주고 싶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할 줄 아십니까?"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싯다르타는 사랑을 어찌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결국 아들은 떠나고, 그는 큰 상처를 받는다. 애타고 간절하게 아들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한다. 그 고뇌 속에서 그제야 그는 인간을 이해했다. 소인배들의 허영심과 탐욕, 충동을 더 이상 가소롭게 보지 않았다. 그것에 의해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을, 그로 인해 무한한 것을 이룩해낸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의 괴로움을 겪고 나서야 싯다르타는 번민을 그치고 무한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이 얽혀 있음을. 목표와 갈망, 번뇌와 쾌락, 선과 악이 모두 합쳐져 삶이 된다는 것. 시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 번뇌와 행복 사이에 틈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친구여! 자네는 부처가 되고 있는 도중이 아닐세. 자네 속에 이미 부처가 있네. 지금 오늘 자네 안에 이미 미래의  부처가 있는 것일세. 어린애 속에는 이미 백발 노인이, 죽음이 있고, 모든 죽어가는 존재 속에는 영생이 있네. 도적이나 노름꾼 속에도 부처가 있고 브라만 속에도 도적이 있는 법이네. 시간을 지양하고 전생, 현생, 미래의 생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가능성은 깊은 명상 속에 있네. 그렇기에 모든 것은 선이고, 완전하며, 나를 해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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