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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현진건의 무영탑 독후감

by 밀리멜리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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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의 작가 현진건이 쓴 장편소설 '무영탑'을 읽었다. 일제 강점기 때 쓰여진 소설이라, 책에 자주 등장하는 옛날 표현이 생소하기도 하고 신선하다.

 

 

무영탑은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을 지은 아사달 아사녀 설화를 기초로 한 것이다.

 

원래 부여사람이던 아사달은 탑을 짓기 위해 서라벌로 온다. 탑을 짓는 공사가 길어지자 아사녀가 서라벌로 아사달을 찾아오지만, 탑이 완공되기 전에는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듣는다. 불국사의 문지기 스님이 탑이 완공되면 십리 밖 연못에 탑이 비친다고 일러주었다. 아사녀는 그 말을 듣고 연못에서 기다리다가, 그리움에 지쳐 연못에 빠져 죽는다.

 

이 설화를 슬프고 아름답다고 표현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다. 왜 죽어??! 탑이 십리 밖의 연못에서 보인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서라벌까지 멀리서 고생고생하며 찾아온 아사녀가 갑자기 물에 빠져 죽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어떻게 말이 되게 할까? 왜 아사녀는 죽어야만 했을까?

 

 

책의 구조도를 마인드맵으로 그리면 좋다길래 한번 그려 보았다. 사건 중심으로 그렸는데, 그리고 보니 정말 사건이 많고 복잡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과연, 소설가의 상상력은 대단하다.

 

이런저런 사건이 있었지만, 역시나 아사녀가 고생고생해서 아사달을 찾아왔는데 결국에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남편의 바람을 의심해서였다. 석가탑을 짓는 석공이 귀족의 딸과 놀아난다는 소문이 서라벌 내에 쫙 퍼져 있었다. 게다가 다른 귀족에게 첩으로 팔릴 위기까지 닥쳐, 결국 설화처럼 죽음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사달이 정말 바람을 폈는가? 하는 문제는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소설에서는 아사달의 마음이 넘어갔다는 표현도 없고, 스킨십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탑이 완공되기 전까지 마지막 3개월동안, 아사달은 귀족의 딸 주만이 거의 매일 찾아오는 걸 거절하지 않았고, 은근 기대하기까지 했다. 

 

현진건의 다른 소설에서도 남자주인공은 큰 결심을 내리거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주어진 현재 상황에 체념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사달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아사녀를 그리워하면서도 다가오는 썸녀(?) 주만을 거절하지 않고, 즐길 건 다 즐기면서 나중에는 그냥 괴로워만 한다.

 

결국 탑이 완공되고, 아사달은 주만과 함께 부여로 달아나려다 아사녀가 근처 연못에 빠져 죽은 걸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사달은 충격받고 괴로워하며, 아사녀의 얼굴을 그리며 불상을 만든다. 그 불상의 얼굴이 처음에는 아사녀였다가 나중에는 점점 주만과 겹쳐진다는 것을 읽고 괜히 마지막장이 씁쓸해지는 소설이었다. 결국 바람 핀 거 맞구만. 

 

 

- 책을 읽으며 한 메모

 

* "감중련하고 그린 듯이 앉았다" : 감중련은 ☵ 모양으로, 팔괘 중 하나인 감괘의 상형을 뜻한다. 표정이 감중련() 같다는 말은 이모티콘으로 표현하면 -_- 이 표정인가 보다. 😑

* 주만의 시종 털이 정말 귀엽다. 발랄하고 주책없이 재밌는 캐릭터.

* 주만의 아버지 귀족 이찬 유종의 성격에 작가의 성격이 조금씩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당나라 것은 모두 싫어하고 신라의 국선도와 화랑을 숭상하지만, 당나라의 술 소홍주만은 거절하지 않는다. 술 좋아하고 독립운동가였던 현진건도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 딸이 아무리 바람났다고 해도 어떻게 딸을 불태워 죽일 생각을 하나? 주만이 석공 아사달과 바람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만의 아버지는 사실확인도 하지 않고 딸을 태워버린다. 뭐야, 이 전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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