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뭐하러 커피를 타줘요?

by 밀리멜리 2022. 7. 17.

반응형

회사 회의실 안에는 작은 냉장고가 있다. 점심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들은 오전 시간동안 여기에다 도시락을 넣어 놓는다. 떼아는 1~2주에 한번씩 이 냉장고에 커피크림을 사다 채워넣는다. 냉장고를 열면서 떼아가 묻는다. 

 

"너 커피 마셔?"

"으응... 가끔씩."

"그럼 이 커피 크림좀 많이 가져가. 매번 채워넣는데, 아무도 먹지 않아서 유통기한이 지나버린단 말야."

"오, 아무나 가져가도 돼?"

"제발 가져가 줘! 버리기 너무 아까워. 이것도 버려야 해. 나랑 카페테리아에 새 커피 크림 사러 갈래?"

"같이 가자. 나도 좀 걷고 싶으니까."

 

떼아는 익숙하게 커피크림을 자기 카드로 결제한다. 나중에 영수증을 받아 환급받는다고 한다.

 

 

"흐음... 역시 귀찮겠네. 사놓고, 보관하고, 영수증 제출하고. 게다가 한두번만 먹고 사람들이 다 먹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꼭 사놔야 해?"

"워낙 회의가 많으니까... 어쩔 수 없지."

"네가 커피도 준비해야 해?"

"한잔 한잔 다 따라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커피머신이랑 컵이랑 크림이랑 준비해놔야 해."

 

나는 한번도 커피 심부름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 떼아는 아무래도 더 높은 직책의 비서이기도 하고, 회의가 워낙 많아서 이런 걸 준비해야하나 싶다.

 

얼마 전, 새로운 회장이 임명되었다. 나도 회의실 앞에서 마주쳐서 인사한 적이 있다. 어째저째 소개를 받고 뭐라 말해야 할 지 몰라 '비앙브뉴(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하긴 했는데... 회장에게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게 맞나?

 

떼아는 새로운 회장이 참석하는 회의까지 들어갔다길래 궁금해서 물었다.

 

"새로운 회장 회의에서 직접 보니까 어때?"

"음... 아무래도 처음이라 그런지 좀 정신없어 보이더라. 그래도 할 말은 잘 하더라고."

"아하. 난 내부에서 회장이 임명될 줄 알았는데, 외부에서 올 줄은 몰랐어."

"원래 정계에 있는 사람이래. 아버지도 유명한 정치인이고. 나이도 진짜 젊어! 서른 다섯살 정도밖에 안되어 보이던데."

"에이, 서른 다섯은 좀 심했다. 설마 서른 다섯에 회장이 돼?"

"어디 보자, 유명한 사람이라 검색하면 다 나와. 이때 대학 졸업을 했다니까... 계산해 보니 마흔셋이네."

"그래도 진짜 젊다! 인트라넷 보니까 평점이 반반으로 갈리던데. 워낙 전 회장이 잘했어서 그런가봐."

"음, 내 인상에는 그런 진중한 멋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좀 당황한 것 같았고... 가지고 온 자료랑 전혀 딴 얘기를 하더라고. 약간 딴길로 샜어."

"아... 그러면 회의록 쓰기 힘든데. 고생했네."

 

떼아가 잠깐 생각하더니 또 이런 말을 한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어! 얼마 전에 차관급 회의가 있었거든. 그때도 평소처럼 커피 준비하려고 했는데, 날더러 커피 준비할 필요 없다는 거 있지?"

"정말? 잘됐다!"

"응. 뭐하러 커피를 타줘요? 마시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가지고 회의 들어오라고 그러더라고. 이제 크림 안 사도 되서 너무 좋아."

"굿!! 우와, 근데 차관들 앞에서 그랬단 말야?"

"사실 차관이 먼저 커피 준비하지 말라고 했어. 그런 심부름은 할 필요 없다고."

"오... 그랬구나!"

"차관이랑 회장이 다 필요없댔으니까, 이제 난 자유야!!"

 

뭔가 드라마같은 상황이 연출되어서 듣는 내내 너무 재미있었다. 다른 사람 커피를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