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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점심시간, 공원에서 5분 명상

by 밀리멜리 202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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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슬슬 걸어다녔다. 우편실에서 일하는 루이를 만나 복도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잠깐... 근데 이 사람, 이름이 루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까먹었다. 아무튼 루이라고 하자.

"안녕! 잘 있었지? 어휴, 정말 덥지 않아?"

난 정말 괜찮은데... 이 정도면 진짜 시원한 편이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 조금 습도가 높은 감은 있지만... 정말 이 온도가 뭐가 덥단 말인가??

 

체감온도 24도가 덥다니 이해가 안 간다...

난 별로 덥지 않아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내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로 루이가 계속 말했다.

 

"어휴, 이거 완전 까니뀰(폭염더위)이야. 작년에 까니뀰이 왔을 땐 잠깐 일을 쉬기도 했었는데, 올해는 안 그러려나?"
"더위 때문에 일을 쉬기도 한다고요? 근데 올해는 아직 그렇게 덥지는 않은 것 같은데..."
"넌 사무실에 에어컨 있니?"
"있긴 한데 켠 적은 없어요. 그냥 기본 환기가 잘 되는 거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괜찮은데.."
"넌 참 운이 좋다. 하긴 여긴 병원이라 온도 조절을 잘 해놔야 하겠지. 그치만 내가 일하는 지하 우편실에는 그런 게 없어. 어휴, 정말 덥다. 게다가 요즘 일손도 부족해서 더 힘들어. 코로나 때문에 결근한 사람도 있고, 휴가간 사람도 있으니까..."
"많이 힘들겠어요. 피곤하진 않아요?"
"괜찮아, 괜찮아. 점심 잘 먹으라고!"

 

인사하고 나서 핸드폰의 날씨 화면을 다시 보니 루이 말대로 정말 폭염 주의보가 떴다. 근데 30도도 안되는데 무슨 폭염...? 여기 사람들 추운 거에 너무 익숙해서 더운 게 뭔지 모르나...?? 새삼 퀘벡 주가 이누이트가 사는 곳이라는 걸 다시 깨닫는다. 물론 엄청 멀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루이의 얼굴이 어쩐지 벌겋고 땀을 좀 흘리는 것 같다. 환기 잘 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거랑 갑갑한 우편실 창고에서 일하는 거랑 차원이 다르겠지... 내 생각이 짧았다. 

 

* * *


점심시간이 30분이나 남아서 그냥 사무실로 돌아가기 뭐하니 공원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벤치에 잠깐 앉아서 명상을 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어쩐지 평소보다 거친 바람인데, 또 비가 오려나? 

여름햇살이 나무 사이로 비쳐 반짝반짝하다. 벤치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니 바람이 나뭇잎에 흔들리는 소리, 나무 꼭대기에서 우는 새 소리가 들린다.

어젯밤 비에 젖은 흙 냄새가 나고, 강아지 털 냄새도 난다. 

조깅하는 사람의 운동화 발자국 달리는 소리도 난다.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려서 눈을 뜨니, 공원 관리 트럭이 다가온다. 조수석에 앉아 느긋하게 사과를 먹는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5분 남짓한 짧은 명상이었다. 좋은 휴식이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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