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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느릿느릿 랑비노와 발가벗는 사람들

by 밀리멜리 202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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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떠났던 프랑스가 돌아왔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안녕! 우리 점심 사러 카페테리아 갈까? 쟝도 같이 가자고 하자. 쟝! 카페테리아 갈 건데 같이 갈거지?"
"응, 응. 잠깐만."

프랑스가 쟝 사무실의 문을 똑똑똑똑똑 하고 두드린다.

"이렇게 조금 압박을 줘야지 빨리 나오지. 완전 무슈 랑비노야."
"랑비노가 무슨 뜻이야?"
"아! 느리게 행동하는 사람을 랑비노라고 해. 느릿느릿한 사람들. 퀘벡 표현이야."

그 때 쟝이 사무실에서 나왔다.

"알로, 무슈 랑비노. 방금 소영에게 랑비노의 뜻을 알려줬어."
"하하하, 잠깐 전화 받느라고... 내가 늦었네."

프랑스가 상사를 놀리며 이렇게까지 허물없이 대하는 건 아마도 함께 일한 시간이 꽤 되기 때문이지만, 역시나 이런 장면은 낯설다.

나는 점심도시락을 싸왔기 때문에 간식으로 먹을 메이플시럽 머핀을 하나 샀다. 머핀에도 메이플 시럽이 들어가다니, 퀘벡답네. 

쟝은 치즈가 든 잉글리쉬 머핀을 고르고, 프랑스는 뭘 먹을까 계속 고민하는 듯 했다. 

 

 

헤메던 프랑스가 카페테리아에서 제일 늦게 나왔기 때문에, 쟝과 나는 복도에 서서 프랑스를 기다렸다.


"아까 배운 랑비노라는 말, 프랑스한테 써먹어! 이렇게 늦잖아!"
"하하하! 그럴게요."

쟝의 말대로, 프랑스가 샌드위치를 들고 나오자마자 '랑비노!'하고 소리쳤다.

"아, 이번엔 내가 제일 늦었네. 아까 가르쳐 준 거 진짜 잘 써먹는데? 그런데 난 여자니까 랑비너즈라고 해야지."
"아, 그러네!"

 

* * *


우리는 점심을 먹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점심시간 대화 주제는 정말 아무거나 생각나는 것들이다.

"요전에는 온타리오 거리를 걷는데, 길거리에 익스히비셔니스트가 있지 뭐야?"
"오! 그래서 사진 찍었어?"
"아니, 빨리 다른 길로 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저기 이상한 사람 있다고, 다른 길로 가라고 했지."
"경찰은 안 왔고?"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익스히비셔니스트 (exhibitionist)? 영어인데?

"잠깐, 익스히비셔니스트가 뭐야?"
"완전 발가벗고 길거리에서 관심 끄는 사람들이야."

"으엥????!"

"근데 딱 하나만 입었더라고."
"뭘 입었는데?"
"양말."
"양말? 거 참, 웃긴 사람이네."
"근데 발에 신은 게 아니라 중요 부위를 가리려고..."
"으하하하하하하!!"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역시 또 하나를 알아가는 점심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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