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무실이 조용하다. 마침 회의록을 두 개나 써야 하기 때문에, 집중이 잘 되고 괜찮을 것 같다.
짧은 한 시간짜리 회의부터 시작했는데, 하루 종일 매달려도 다 쓰지 못했다. 다음 주가 휴가인데, 휴가 끝나기 전에 회의록을 다 끝냈으면 좋겠다.
막상 회의할 땐 못알아들었지만, 녹화된 파일을 다시 돌려보고 하니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회의를 보면 사람들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싶다. 병원에 산부인과가 새로 생기는데, 이 산부인과는 응급팀과 중환자실팀으로 따로 나눈다. 그럼 응급팀은 응급환자가 아닌데 환자를 보고 있다고 불평이고, 중환자팀은 중환자가 아닌데 환자를 보고 있다고 불만이다.
일손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같은 일손부족이라도 한국과 이곳의 반응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일손이 부족하면 한 사람을 갈아서 여러 일을 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은 묵묵히 세 사람, 네 사람 몫을 해내고, 기한 내 웬만한 일들을 다 처리한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겠지? 불만을 터뜨리더라도 속으로 삭히고 아무튼 일을 한다.
이곳에서도 일손부족이면 한 사람이 여러 일을 해야 하지만, 바로 불만을 표시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정해달라고 요구한다. 경영 측은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 요구를 받아들인다. 결국 일을 분배하고, 처리가 안 되는 일은 그냥 미룬다.
그냥 미루다니 ㅋㅋㅋㅋ 한국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근데, 미루면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는데... 사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냥 더 기다려야 하는 것뿐이지. 나는 몬트리올에살면서 기다리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바쁘고 사람이 부족하더라도 좀 숨쉴만 하다고 느껴진다.
얼마 전 이사벨도 내게 추가 업무를 부탁했다.
"다음 주에 인턴이 올 건데, 원래 다른 부서 일이지만 그 일 좀 네가 도와줘야겠어. 그 부서에 비서가 그만두고 아직까지 대체자를 못 구했거든."
"그래요, 맡아서 할게요. 참, 그런데 저 다음주 휴가인데, 괜찮아요?"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하루만에 끝낼 수 있을 거야. 휴가는 꼭 가야 해. 휴가는 정말 중요하니까."
맞아, 휴가는 중요하지.
혼자서 종일 일하다보니 휴식시간을 까먹어서, 잠시 밖을 산책하러 나섰다. 5분, 10분이라도 좀 걷고 들어가면 훨씬 머리가 맑아져서 좋다.
가는 길에 초콜릿 상자를 든 동료 발레리를 만났다. 발레리는 지난주 토요일이 네 살짜리 딸의 생일이었다며, 초콜릿을 나눠줬다.
"이건 코코넛 크림이고, 이건 초콜릿이야."
"우와, 맛있겠다! 두 개 가져가도 돼? 이미 지났지만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줘!"
초콜릿을 먹으며 공원을 산책했다.
그래, 휴식이 중요한데... 나는 빨리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왤까? 이건 내가 한국인이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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