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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하루종일 회의록을 쓴 재택근무날

by 밀리멜리 2022.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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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금요일,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다. 휴가 전날 녹화해 뒀던 회의가 있어서, 그 회의록을 다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걸 좀 빨리 해 놓으면 다음주가 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다... 아, 그러나 마음의 평안은 일을 다 끝낸다고 오는 것이 아니건만! 

 

이제는 회의록을 자주 쓰다 보니 익숙해져서, 처음에는 하나 쓰는 데 2주일 걸렸던 것이 이제는 3일 정도만 매달리면(?) 다 쓸 수 있다. 물론 회의가 있는 그 자리에서 다 쓰면 가장 좋겠지만, 그 자리에서는 하나도 이해를 못하고 앉아있기만 하기 때문에 녹화한 것을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이번 회의는 정말 어려웠다. 의사와 간호사, 보건소 쉐프들이 모인 회의였는데, 의사나 간호사들은 뭔가 말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 뭐가 다르냐고 물으면 꼭 집어서 말하긴 어려운데... 암튼 용어도 어렵고, 무슨 말을 왜 끝내지도 않고 다른 말로 넘어가는지! 오늘도 눈치만 늘어간다.

 

과자랑 녹차를 먹으면서 하루종일 썼더니 어떻게든 퇴근 전까지 다 채우긴 채웠다(?) 이게 어떻게 써지는 건지 내가 써놓고도 의아하다. 어영부영 쓰기는 썼는데, 아무래도 크리스틴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해야겠다.

 

대충 정리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내가 일하는 부서는 주로 부모나 가족이 없는 고아들, 방치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을 맡아 하는데, 태어나자마자 프로그램에 편입되는 아기들도 많다. 그러니 아픈 아이들도 많다.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주치의가 없다. 대신 보건의사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는데, 여기도 의사가 부족해서 대기 환자들이 무척 많다. 이런 환자들을 누가, 어떻게, 위급한 순서대로 치료하는 걸 결정하는 회의였다. 보통은 18개월 미만의 아기들이나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우선으로 치료한다. 의료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누가' 이 환자들을 돌보느냐가 제일 큰 문제이다.

 

아무튼 회의를 요약하자면 '이 환아들을 누가 돌보나?'에 대한 대답으로 나도 어렵고 너도 어렵고 저사람도 어려우니 이 문제는 다시 논의해야겠다로 결론이 났다.

 

회의 도중에는 거의 못알아듣고, 딱 하나 알아들었던 부분은 어느 쉐프 간호사의 말이었다.

 

"정신차려, 젠비에브, 너 꿈꾸니? 그러니까 무슨 말을 했더라? 소아과에 관심이 있는 간호사가 4명 있긴 하지만, 4명으로 그 환자들을 다 어떻게 처리해요? 게다가 원래 하는 일이 있잖아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오전, 오후 다 일하고... 원래 하던 일을 하면서 언제 또 소아과에 시간을 내겠어요? 그런데 내가 너무 말이 빠르죠? 아까 커피를 마셔서. 그런데 아까 얘기했던 통합 등록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이 젠비에브라는 간호사가 자기 자신더러 '정신차려, 너 꿈꾸니?'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땐 졸린 와중에 정말 웃겼다. 나야말로 회의 내내 정신놓고 꿈꾸듯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이 회의에서 녹화화면으로 내 얼굴을 보니 그렇게 지루해하고 끔찍해하는 얼굴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니! 난 다만 회의 내내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을 뿐인데, 표정이 넘 지독하네. 

 

아 회의... 대체 뭐라는거야? (사진출처: 펙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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