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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동료들과 푸틴 먹기 - 아직도 일상대화가 어렵다

by 밀리멜리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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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떼아가 오랫동안 아팠다가 돌아온 기념으로 동료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회사 앞에 있는 푸틴(감자튀김과 치즈)전문점에서 먹기로 했다. 

 

떼아의 사무실은 원래 바로 내 사무실 바로 옆이어서 무척 친해졌는데, 얼마 전에 다른 층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도 한 층만 내려가면 되니까 자주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한 번도 갈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오후 즈음에 떼아의 문자가 왔다.

 

"안녕! 오늘 저녁에 카미유도 초대할거야. 괜찮지?"

"아, 좋은 소식이네! 빨리 저녁이 왔으면 좋겠다."

 

카미유는 시각장애인으로 원래 실습생으로 일했는데, 이번 주부터 떼아의 사무실에서 정식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카미유, 연구원 된 거 정말 축하해! 부럽다."

"아, 고마워. 진짜 좋아, 여기서 일하게 되서."

"일은 어때? 실습할 때보다 더 바쁘지?"

"뭐, 이제 막 시작해서 두고 봐야지. 그럼 식당으로 갈까요?"

 

떼아가 친절하게도 카미유의 팔짱을 끼고 길을 안내했는데, 정말 능숙했다. 나도 카미유의 팔짱을 끼고 안내한 적이 있는데, 도로에 튀어나온 곳이 있거나 장애물이 있으면 뭐라고 해야 빨리 알아들을까 하고 걱정하느라 말을 잘 못한 적이 많다.

 

"앞에 턱이 있으니 조심해, 그리고 오른쪽으로 계속 걸을 거야."

 

식당으로 가는 길에 떼아의 동료 나빌라를 만났다. 나빌라는 작년에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나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나빌라는 고맙게도 나를 기억해 주었다. 이야기해보니 정말 편하고 재밌는 사람이다.

 

"잠깐, 나 주문하기 전에 일 마무리만 조금 할게. 이걸 어떻게 하더라..."

"거기다가 K-1254를 쳐봐."

"응, 그러면 되겠네."

 

나빌라가 일하는 걸 조금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런데 식당에 와서까지 일하는 거야?"

"아, 나 내일 쉬는데 이번주까지 마무리해야 해서. 알지, 우리 10일 중에 하루 쉴 수 있는 거?"

"뭐, 그게 뭐야?"

"2주에 월화수목금, 월화수목금 해서 10일 일하잖아? 9일동안 조금씩 더 일하고 하루를 쉴 수 있어. 난 그래서 2주마다 한번씩 금요일에 쉬어."

"뭐?! 그럴 수 있다고?"

"몰랐어? 한번 상사한테 물어봐. 아마 부서마다 다를테지만..."

"아마 우리 부서는 안 될 것 같아. 엄청 바쁘거든. 내가 없을 때 일해줄 사람도 없고."

"우리 부서는 하긴 좀 많이 헐렁한 편이긴 해."

 

 

메뉴가 나오고, 떼아는 눈이 안 보이는 까미유를 위해 메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주었다.

 

"그럼, 내가 메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줄게..."

 

떼아가 la lecture non-exhausitive라는 말을 썼는데, 그 말에 다들 웃었다. 이 말... 번역도 잘 안되고 인사이드 조크라서 설명하기가 힘들다. 근데 떼아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다들 웃음이 터진다. 떼아의 유머감각을 배우고 싶다.

 

 

음식은 그럭저럭 맛있었다. 

 

감자튀김에 뽀송뽀송한 치즈가 들어가고, 소스를 뿌린 이 음식이 바로 퀘벡 특산물 푸틴이다.

 

 

신나고 즐겁게 수다를 떨었지만, 식사가 다 끝나고 나는 은근히 우울해졌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것도 있고, 알아들은 것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웃기만 했기 때문이다. 나도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답답하다. 언어야 빨리 느는게 아니지만, 빨리 늘리고 싶고 아직까지 일상대화를 못알아들으니 불편하다.

 

 

암튼 퀘벡에서 사는 건 언어가 제일 문제인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한데, 못 알아듣겠으니 원.

 

뭐 어쩔 수 있는가,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배도 부르겠다 집까지 쭉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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