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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회사에서 읽은 재밌는 보고서와 우울한 보고서

by 밀리멜리 202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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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회사에서 정말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다. 아, 왜 여름휴가 기간인데도 이렇게 바쁜 걸까?!
 
내 상사는 훨씬 더 바쁘다. 매일 9~10개 회의를 들어가고, 하루에 들어오는 메일만 90 통이 넘는 것 같다... 비서인 나조차도 그 메일을 모두 읽어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어떻게 이렇게 메일을 다 처리해요?"
"일단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집에서 일을 하고 출근하지. 그리고 퇴근하면 집에 가서도 하고."
 
이렇게 바쁜 게 정상인가? 의료계통이라 그렇기도 하고, 요즘 사람이 부족해서 일이 많아진 것도 있다. 그래도 퀘벡은 좀 워라밸이 지켜지는 편인 것 같은데... 아무튼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게 문제다.
 

 
보고서를 읽다 보면 재미있는 것도 있고 우울한 것도 있다.
 
오늘은 산부인과 의료물품을 사기 위해 돈을 지원해 달라는 자금 신청서를 읽었다. 재단에 보내는 신청서인데, 읽다 보면 왜 이 물건이 필요한지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의사들이 쓴 보고서를 보면 '글 진짜 잘 쓴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물품을 리스트로 정리해 가격과 총합을 내는 표를 편집하는 일을 했다. 그 물품 중에는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는데, 예를 들어 아기를 낳을 때 산모가 잡는 끈(?)이라든지, 자궁경부가 얼마나 열렸나 비교하는 자 같은 것도 있고, 뱃속의 아기 자세를 가늠하는 판, 산모에게 필요한 자세와 호흡법을 알려주는 포스터 같은 것도 있었다. 침대 매트리스가 가장 비쌌다.
 
비싼 물품을 정리한 보고서와 좀 저렴한 가격으로 조사한 버전 두 가지가 있었는데, 상큼하게 비싼 버전이 선택되었다. 역시 돈은 많다! 사람이 부족해서 그렇지.
 
우울한 보고서도 간간히 읽었다. 얼마 전 어떤 산모가 아기를 출산했는데, 아기가 죽은 채로 태어났다는 거였다. 읽자마자 마음이 아팠다. 아기는 뱃속에서 태변에 숨이 막혀 질식한 듯 했다. 아기가 나오고 의료진들이 달려와 소생술을 했지만 결국 살아나진 못했다. 건강한 아기였는데, 출산이란 이렇게 위험하구나 생각이 든다.
 
또 가끔은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이 자살시도를 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아이들이 아무 이상 없이 건강을 회복했어도 단 한번이라도 시도를 하면 조사가 시작되고 긴 보고서가 쓰여진다. 
 
이런 걸 읽고 나면 슬프기도 하지만 곧 무감각해진다. 일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치만 읽고 나면 며칠 동안은 그 보고서 내용이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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