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성격이 뭘 계획하는 편이 아니다. 즉흥적이고, 할 게 생각나면 그때 그때 하거나, 싫어하는 일은 미루기도 잘 미룬다.
내 성격은 특히나 공무원 비서 일에 잘 맞지 않는다. 일의 특성상 계획을 꼼꼼하게 짜야 하고, 우선 순위를 결정해야 하며, 좀 느리더라도 실수가 없게, 쓸데없이 두 번 일하지 않게 잘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이 일을 하면서 좀 더 차분하게 천천히 일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치만 워낙 성격이 급하고, 빨리 끝내버리고 싶고, 계획은 귀찮다. 그렇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재촉을 하기도 하고, 실수를 자주 하기도 한다.
실수하면 마음 속으로 으아아아악---! 소리를 지르고 괴로워하는데, 사실 나만 그런게 아닌가 보다. 점심시간, 떼아와 산책을 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속에 카린이 살고 있거든. 아, 나를 막 혼내는데 진짜 괴로워."
"카린? 카린이 뭐라고 하는데?"
"보통 실수할 때 카린이 미쳐 날뛰지. '이런 실수를 해, 미쳤어 너? 이 바보야, 멍청아!' 이런 얘기를 하지. 그러면 나는 우물쭈물 하면서 속으로, 아- 어쩔 수 없지, 이미 저질러 버린 것. 이러고. 막 이불 때리고 그러지."
"하하, 그래도 대응 방법이 좋네. 나도 실수하면 막 혼자서 불안해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요즘 찾은 좋은 방법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 자신에게 메시지를 써 보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실수 안하게 조심하자. 잘 살펴보자... 등등등.
이렇게 써 놓으면 꽤나 도움이 된다. 가끔은 짜증나는 일이나 힘든 것도 좀 쓰고 나면 불안감도 덜하고, 실제로 실수도 적어졌다.
그런데 오늘 상사가 내 사무실에 와서 이것저것 설명해 주다가, 이 종이를 보고는 말했다.
"우와, 이 글씨 너무 귀엽다. 한국어야?"
"맞아요, 한국어."
"귀여워! 뭐라고 쓴 거야?"
"아하하하... 으음."
"비밀이면 말 안해도 괜찮아."
"아니예요, 그냥 나 자신한테 하는 말 써놓은 거에요. 난 할 수 있다, 잘 하자. 그리고 밑에는 쉬고 싶다고 적었어요."
"아하하하하, 그거 재밌네. 나도 동감이야. 너 진짜 재밌네!"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한글이 귀엽다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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