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공포증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전화를 할 때는 항상 긴장된다.
뭔가 말이 길어질 것 같으면 "자세한 건 이메일로 연락하세요!"를 외친다. 내 치트키다.
그렇지만 오늘은 특히나 진땀이 났다.
"안녕하세요, 이사벨 사무실이죠?"
"네, 맞습니다."
"제 이름은 꺄린 그ㄹ^@#인데요, 이사벨과 통화 가능한가요?"
사람 이름... 잘 안 들린다 😫 꺄린 뭐라고요..?
"오늘은 부재중이에요. 내일 이메일이나 팀즈로 연락주실래요?"
"뭐라고요?"
"팀즈요."
"뭐라고 하는지 잘 못 알아듣겠네요."
"내일 이메일로 연락주실래요?"
"그래요, 메일 주소좀 알려주세요."
"쎄쎄에스..."
"뭐라고요? 잘 안들려요. 메시지로 보내주실래요?"
"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꺄린 걀@#%. 전화번호는... 7705..."
"전화번호 7705 맞나요?"
"아니요, 7705."
"네, 7705네요. 금방 메시지 보내드릴게요."
"네... 이사벨의 비서 맞으시죠?"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프랑스어가 익숙치 않아서... 아무튼, 곧 보내드릴게요."
상대방은 내가 말하는 메일주소와 팀즈를 못 알아듣고, 나는 전화번호를 못 알아들었다. 아휴... 이 언어의 장벽아! 또 좌절했다.
전화통화가 잘 끝날 때도 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뭐라고요? 뭐라고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질문 세례를 받을 때도 있다. 이럴 땐 막 부끄러워져서 갑자기 숨고 싶어진다.
죄송하다고 말할 필요 있었나? 없었던 거 같은데. 그런데 당황해서 저절로 이 말이 나와버렸다.
하, 그럴 때도 있는거지! 그만 생각해야겠다. 당당해지자!
지난 금요일은 쿰바의 마지막 날이었다. 떠난다니 섭섭해지는데... 쿰바가 떠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왜 그만두는지 물어봐도 돼?"
"좀 더 발전하고 싶어서. 여기서 일한지 오래되기도 했고, 더 이상 발전이 없는 것 같아. 중독치료 환자들이 예약해놓고 안 올때가 많거든. 그러면 그 날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해. 너무 지루하고.. 테크니션이나 클래스 1로 승진하고 싶어서."
"아, 그랬구나. 대단하다. 발전을 위해서..."
맨날 바쁘다고 징징거리는 내가 좀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순간,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그럼 혹시 새로 생긴 산부인과 신생아 병동에서 일해볼 생각 있어? 지금 일하던 비서가 떠나서, 지금 내가 그 일을 맡아 하는 중이거든. 너가 와주면 좋겠다!"
"클래스 1이야?"
"응, 클래스 1. 회의도 참여해서 회의록도 쓰고, 상사의 메일관리도 할 거야."
"오, 그럼 나 관심있어."
"그래? 잘됐다. 그럼 내가 상사한테 이야기 해놓을게."
"고마워! 정말 친절하다."
쿰바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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