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실험실에 다녀왔다.
퇴근하고 한두 시간씩 끙끙대며 과학책과 씨름하는 걸 보며 찬이 말한다.
"너 사실 그거 재밌어서 하는 거지."
"과학공부가 재밌냐고? 재밌진 않은데..."
"근데 어떻게 그렇게 계속하냐."
"음... 고등학생때 한국에서 배운 거랑 좀 달라서 재밌는 부분도 있긴 한데, 좀 골치아프긴 해.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만둘 수도 없고 해야지 뭐."
진짜 재밌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퇴근하고 좀 놀고 싶은데, 그냥 해야 하니까 한다. 하다 보면 그냥 집중이 된다.
이번 수업에서는 태풍, 저기압/고기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가 제일 재밌었다. 뜨거운 공기가 하늘로 올라가면 거기에 빈 공간이 생기고, 공기분자가 그 빈 공간을 채우려고 막 몰려들어 바람이 생기고 비구름과 천둥번개가 생긴다.
예전에는 이런 걸 그냥 냅다 외우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아, 뜨거우니까 공기분자가 서로 밀어내고, 공기가 움직이니까 바람이 생기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신기하다.
그렇지만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성격이 너무 급해서 또 문제를 만들었다.
수업을 끝마치려면 4~5번쯤 숙제를 제출해야 하고, 그 중 하나는 실험실에 가서 직접 실험을 해야 한다. 이번에 선생님들도 방학이라 한 달간 실험실이 문을 닫았는데, 나는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답지를 보고 실험 결과를 베껴버렸다.
베낀 답지를 그대로 들고 실험실에 가서 실험을 했더니, 실험실 선생님이 바로 알아챘다.
"보고서에 결과가 써 있네? 이건 어떻게 나온 실험결과야?"
"어... 사실 답안을 보고 베꼈어요."
"그럼 안되지! 그럼 배우는 게 아니잖아. 시험 볼 때는 어떻게 하려고?"
"참고만 하려고요... 죄송해요. 보고서는 다시 새로 쓸게요."
아무 생각 없이 답안을 들고 왔는데,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하니까 정말 혼쭐이 났다.
혼날 짓 하긴 했지!
순간 머릿속으로 네다섯가지나 되는 변명거리가 막 떠올랐는데, 애초에 내가 잘못한 거 맞으니까 인정하고 다시 쓰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지만, 눈초리가 매서웠다. 나는 그 따끔따끔한 눈초리를 받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실 답안을 베낀 건 벌써 한 달이 지난 일이다. 실험실을 안 가고 보고서를 썼으니 답 베낀 건 너무 뻔해서 거짓말도 못할 일이다. 나는 그때 숙제를 빨리 끝내버리고 싶기도 하고, 실험실 가기가 너무 싫어서 싶어서 답을 베꼈다.
그렇게 베끼고 혼날까봐 내내 마음 졸였던 게 기억난다. 게다가 실험실에 안 가면 어차피 숙제 제출을 못 한다. 혼나는 순간이 두려우면서도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아무튼 차라리 들키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그냥, 천천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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