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업무가 들어왔는데 좀 어려워 보인다. 보통 책임 간호사들이 무슨 일을 처리하다가 안 되면 나한테 온다.
"소영, 11월 16일 목요일에 회의실을 예약해야 하는데... 빈 곳이 없어. 좀 봐줄래?"
라는 이메일을 받고, 주변 건물의 회의실을 다 뒤졌다. 목요일에 뭔 일이 있는지? 정말 빈 회의실이 하나도 없다! 3주나 남았는데 대부분 회의실이 예약이 꽉 찼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간호사에게 예약을 못했다고 대답했다.
'정말 회의실이 없는데... 뭘 더 할 수 있겠어?'
하는 생각에 그냥 없다고 하고 다른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제 이사벨에게서 연락이 온다.
"우리 그때 하루종일 회의실 예약해야 해! 혈액센터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오거든. 프로젝터도 있어야 해."
윽, 거절했던 일이 결국 내 손으로 들어왔다. 내가 안 된다고 대답하니 내 상사에게 부탁해서 돌고 돌아 다시 내 업무로 돌아온 것이다. 없는데... 안 되면 되게 하라 뭐 이런 건가?
어떻게 안 되는 걸 되게 할까?
회의실 예약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이번처럼 빈 곳이 없을 때도 있다.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작은 회의실에 의자를 채워 넣을까? 그럼 의자를 어디서 구하지? 다른 사람한테 예약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할까?
예약 취소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어쩐지 좀 내키지 않는 일이다.
방 가지고 싸워야 할 것 같고... 그치만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일단 대강당을 예약한 사람에게 취소해달라고 메일을 보낼까 싶어서 누가 예약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노숙자와 원주민 환자를 위한 의료서비스 인포 세션'
아! 하필 대강당에서는 이런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노숙자와 원주민 환자를 위한 서비스인데, 비워달라고 부탁하면 좀 쫓아내는 것 같잖아!! 일단 다른 곳을 좀 봐야겠다...
적당한 곳 한 군데를 골라 회의실을 취소해줄 수 있냐고 메일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그냥 메일만 보내면 되는 건데, 좀 부담이 된다.
왜 부담이 될까 생각해 봤더니 아마도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서인 것 같다.
그냥 업무메일인데도, 거절당하면 다른 곳을 찾아보면 되는데- 그래도 부담이 되는 게 좀 신기하다.
그 부담감이 무색하게 10분만에 답장이 와서, 고맙게도 회의실 하나를 취소해 주었다. 우와! 다행이다.
결국 일을 끝냈구나! 속이 후련하다.
내가 이 일을 부담스럽게 느꼈던 이유는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첫 시도에 바로 성공했다. 결국 거절당하지도 않았고... 멘탈이 좀 강해졌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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