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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스토너 독후감 - 인생의 선택과 대가

by 밀리멜리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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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라는 책을 읽었다. 50여 년 전 처음 출판되었을 때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2010년부터 유럽 전역에서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첫 번째 챕터를 읽고 나서는 너무 잔잔하고 밋밋한 이야기에 매력을 못 느껴서 책을 덮을까 했는데, 두 번째 챕터부터 푹 빠져들었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주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결혼을 했다. 박사과정을 끝내고 강단에 서서 영문학을 가르치다 삶을 마감한다.

언듯 보기에는 평범하고 심심한 삶이다. 그래서인지 책 내용도 단조롭지만 스토너가 매 챕터마다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고, 그 선택이 삶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걸 목격하고 어쩐지 거기에 감동을 받았다. 선택의 순간이 모여 인생을 이루는 것 아니겠는가?

 

스토너의 선택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기술을 배우러 간 미주리 대학에서, 스토너는 부모님의 기대를 버리고 영문학을 전공하기로 선택한다. 이 선택은 그가 대학교수를 평생직업으로 삼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평생 미주리 대학을 떠나지 않는다.

세계1차대전이 터졌을 때, 그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전쟁에 참가한 동료들 중 하나는 전사하고, 하나는 대학으로 돌아와 승진한다. 명예욕이나 재물욕이 별로 없는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쟁에서 죽은 동료를 가끔씩 추억하며, 나머지 한 친구와는 뜨뜻미지근한 우정을 평생 나누며 살아간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인생이다.

 

선택이 삶 전체에 영향을 준다

 

스토너의 결혼


한편 스토너의 신부감 선택은 충동적이었다. 이 결혼으로 그는 평생 괴로워한다. 스토너의 아내 이디스는 말이 없고 냉담하며 우울한 사람이었고, 스토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 결혼생활이 행복할 리 없다.

다행히 예쁜 딸 그레이스를 낳고 스토너는 정성으로 그녀를 길렀다. 그러나 아내 이디스의 눈치를 보느라 둘은 이야기할 시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고, 그레이스는 엄마의 통제에 갇혀 엄마처럼 말이 없고 우울한 소녀로 자란다.

딸과 아내가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며 스토너는 괴로워하지만 대학에서 일과 연구에 몰두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 대목이 너무 답답했지만, 스토너는 항상 가족과의 갈등을 묵묵히 참아내기만 했다.

갈등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 아닐까? 자신이 괴로워지는 선택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답답하고 우울한 대목을 읽으며 나 또한 그런 선택을 한 경험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변화가 일어나는 게 귀찮아서, 갈등을 마주하기 싫어서 그냥 참아낸 경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의 대가로 그는 평생 괴로운 결혼생활을 견뎌내고 급기야 이루어질 수 없는 불륜에 빠지기도 한다.

 

스토너의 직장생활과 갈등 


또 하나 인상깊었던 대목은 그가 평생을 바쳤던 직장생활에서의 갈등과 선택이다. 스토너는 동료교수 로맥스의 아슬아슬한 부정행위를 목격한다. 로맥스는 한 제자를 편애해서, 자격이 없는 박사과정 학생을 억지로 합격시키려고 힘을 쓴다. 스토너는 그 학생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불합격을 주고, 그 때문에 로맥스는 스토너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승부욕 강한 로맥스는 대학 학과장으로 승진하는데, 이건 스토너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는 스토너에게 엉망으로 시간표를 짜주고, 그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그를 괴롭힌다.

언뜻 보기에 이 싸움은 승진한 로맥스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토너는 로맥스를 처음부터 존경했으며, 사이가 틀어진 이후에는 시간표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그럭저럭 살아 나간다. 

그러나 로맥스는 스토너를 마주할 때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분노에 불타오른다. 잘생기고 능력 있는 로맥스지만, 그의 속은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평생토록 스토너를 미워하며 살아간다.

이 싸움이 로맥스의 패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한 사람은 갈등 후 그냥저냥 살아가지만, 다른 한 사람은 평생 분노하며 괴롭힐 방법을 찾지만 무시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수가 없다. 미워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미워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밑줄을 쳤던 부분을 공유한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것이다.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존 윌리엄스. « 스토너 ». 김승욱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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