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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제러미 리프킨, '한계비용 제로사회'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by 밀리멜리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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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있다. 지니가 묻는다.

 

"만약 지금 기억을 가지고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한 가지 행동만 할 수 있다면 뭘 하겠는가?"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대답을 한다.

 

  • "첫사랑과 헤어지던 마지막 날, 연인을 잡을 걸 그랬다."
  • "부모님에게 더 잘해드릴 것이다."
  • "사랑하던 사람에게 더 잘해줄 것이다."

라는 후회의 답변과,

 

  • "나에게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 "그때 하려고 했던 공부를 계속 할 걸 그랬다."
  • "진로 고민을 더 할 걸 그랬다."

라는 정신적 성숙을 고민하는 사람들,

 

  • "비트코인을 사 놓겠다."
  • "삼성전자 주식을 사놓겠다."

그리고 이런 현실적인 답변으로 나뉜다.

 

MBTI 성격 테스트를 하면 내가 현실적인지 아니면 몽상가적 기질이 있는지 구분하던데, 이 설문조사도 그런 MBTI적인 기질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니가 없더라도 이런 소원을 이루는 것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10년 전으로 돌아갈 것 없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그 행동을 하면 어느 정도라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아무튼, 비트코인을 사겠다거나 삼성전자 주식을 사겠다는 답변은 항상 튀어나와서 무척 인상적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말이다. 그 때 삼성전자 주식이 이렇게 오를 것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비트코인이 그렇게 미친 듯 오를 줄 알았더라면, 구글이나 애플이 미친 듯이 뛸 줄, 테슬라가 광기 어린 수직상승을 할 줄 알았더라면---- 지금쯤 걱정 없이 여유로운 부자가 되어 있을 텐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부자가 되는 법은 너무나도 단순했을 텐데.

 

2014년 출간된 제레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책도, 이런 상상에서 읽기 시작했다. 6년 전 어느 날, 우리 아빠가 나에게 물었다.

 

"삼성전자가 그렇게 올랐던데, 미래에는 도대체 어떤 산업들이 삼성전자가 되어서 지금 사놓으면 후회를 하지 않을까?"

"아빠, 나도 잘 모르겠는데... 지금 알면 내가 부자겠지!"

 

별로 순수한 학문적인 호기심이 아닌, 정말 어떻게 하면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읽어본 책이다. 참고로, 이 책을 읽고도 주식을 사지 않아서 돈은 벌지 못했다. 하지만 이 미래학자가 2014년에 했던 이야기가 2020년 현재 얼마나 현실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보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미래학자의 책들을 출간하자마자 바로 읽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몇년 지나고 나서 얼마나 맞췄는지 손꼽아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위대한 학자분에게 이렇게 말하니 좀 죄송하기도 하다. 재미로 하는 것이니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길. 현대사회의 예언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미래학자들 중에, 제러미 리프킨은 얼마나 맞았는지 한번 보자. 

 

 

한계비용 제로 사회, 제러미 리프킨

 

 

 

 자본주의가 소멸하고 공유주의가 온다?

 

글쎄, 경제를 깊게 알지 못해서 정말 그럴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정말 인간이 자본주의를 버릴 수 있을까? 지니의 소원에 삼성전자 주식을 사놓을 거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데, 자본주의를 버린다고? 6년이 지난 지금 아직 이 예언이 맞는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제러미 리프킨은 자본주의가 소멸할 거라는 근거로,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게 뭔데?

 

음반 시장을 생각하면 알기 쉽다. K-pop 아이돌 하나의 앨범을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하지만 일단 돈을 투자해서 좋은 앨범을 만들고 대박이 터져 백만 장을 팔고 나면, 한 장을 더 파는 게 뭐 그렇게 더 힘들겠는가? 이렇게 한 장을 추가로 더 파는 데 드는 돈이 한계비용이다. 비용이 적어지면 경제는 풍요로워진다. 문제는 이런 한계비용이 적어지는 산업이 어떤 산업인가라는 것이다. 

 

 

 사물인터넷(IoT)의 유행

 

이건 정말 정확하게 예측했다. 2014년 이 책을 읽을 땐 인터넷이면 인터넷이지, 사물인터넷(IoT)은 또 뭐야? 컴퓨터 앞에서만 인터넷 하는 거 아냐? 하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사물인터넷은 별로 어려운 개념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적인 물건에 인터넷이 포함되는 걸 의미한다. 컴퓨터,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아마존의 알렉사나 에코 같은 인공지능 스피커, 아이팟이나 갤럭시 버즈 같은 블루투스 이어폰, 스마트워치, 스마트티비, '스마트' 자가 붙은 모든 것이 다 사물인터넷이다.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유행하는 아이팟을 보자. 애플이 2016년 즈음 처음 에어팟을 냈을 때 그 웃긴 모양새 때문에 '누가 저런 걸 끼고 다니겠냐'라고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누가 에어팟을 웃기다고 생각하겠는가? 

 

 

애플의 에어팟 첫 광고. 에어팟이 이렇게 유행을 탈 줄 알았을까?

 

 

 프로슈머가 증가한다

 

프로슈머란, 소비를 하면서 동시에 생산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도 정말 어느 정도 맞고 있다. 반짝 유행을 타는 것 같았던 유튜버나 스트리머들의 성장이라든지,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삶, 블로그의 유행을 보면, 이 예언이 어느 정도는 맞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하다. 정보는 좀 더 값싸고 손쉬워지고, 생산 방법도 더 쉬워졌다.

 

나도 2014년에는 내가 일기장으로만 쓰던 티스토리에 광고를 달아 내 자신이 프로슈머가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굳이 유튜버, 블로거만 프로슈머가 아니다. SNS에 글을 올리기만 해도 프로슈머가 되어 영향력을 발휘하니, 이 말은 실제로 이루어진 듯 하다.

 

제러미 리프킨이 다만 잘못 예측한 것은 3D 프린터 덕분에 프로슈머가 발달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의 2014년 당시 전망에 따르면, 집집마다 3D 프린터를 놓고 가내수공업과 비슷하게 물건을 생산해서 값싸게 주변에게 팔고, 그래서 한계생산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글쎄, 3D 프린터가 많이 싸지긴 했지만 가정에서 그걸 구입하려고 하진 않고, 미래에도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역시 프로슈머가 주로 생산하는 건 3D 프린터로 만든 발명품이나 인테리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관심을 끌 만한 컨텐츠들이다. 

 

 

 온라인 강좌의 증가

 

와, 솔직히 이것도 안 이루어질 줄 알았다. 정말 재미있는 것이, 당시에는 코세라(Coursera), 묵스(MOOCs) 같은 대학 수준에 버금가는 온라인 수업들이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이런 몇몇 인터넷 사이트들이 온라인 수업 산업을 이끌 거라고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온라인 수업 발전의 주역은 다름아닌 바이러스였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렇게 온라인 강좌 산업을 멱살잡듯이 끌고가서 억지로 발달시켰을 줄이야... 이럴 줄은 저자 제러미 리프킨도 몰랐을 거다. 물론, 미래학자답게 제러미 리프킨은 감염병 판데믹을 미리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온라인 강좌가 뜨는 이유가 디지털 기술발달 때문이 아니라 전염병 때문일 줄이야...🤣 

 

 

 환경 에너지가 뜬다

 

저자는 태양이나 풍력발전, 전기자동차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건 환경을 생각하는 소중하고 인류애적인 마인드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친환경에너지가 더 싸지기 때문이다. 제러미 리프킨에 따르면 친환경 에너지는 정말 매혹적이다. 전기 자동차를 구입하면 환경인식이 투철한 사람처럼 보이고, 실제로 가격도 더 싸다. 한번 충전에 가솔린보다 더 멀리 갈 수 있고, 나라에서 세금을 면제해 주기도 하고 연구하라고 연구투자금도 엄청나게 들이붓고 있다.

 

기술발전이 되어 전기자동차가 가솔린자동차보다 더 싸지면, 누구나 전기자동차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돈에 밝은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너도나도 전기자동차 투자에 달려들었다. 폭스바겐은 800억 유로, 다임러 420억 유로, BMW가 500억 유로를 투자하는 등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미래에 투자했다.

 

다만 그 기술발전의 영예를 차지한 것이 테슬라였을 줄이야! '저 세상 주식'이라는 별명을 가진 테슬라가 그렇게 가파른 상승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몇 년 후에는 모두가 현대나 폭스바겐, BMW 대신 테슬라를 탈 테니까.

 

 

테슬라의 모델 S

 

 

그렇다면 테슬라를 지금이라도 사야 할까? 글쎄다. 다른 폭스바겐이나 아우디, BMW에서 더 좋은 기술이 나오면 또 미친듯이 다른 주식이 뛸 수도 있고, 그럼 테슬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터이다. 3D 프린터처럼 붐을 타는 것처럼 보이다가 또 한계가 보이면 식기 마련이니, 역시 주식은 도박같기만 하다. 아무튼 신기술 발전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는... 전기차 개발 잘 되어 가시나요?

 

이걸 읽고 SK이노베이션 같은 에너지산업의 주식을 사야 하나 고민했었다. (ㅋㅋㅋ) 하지만 결국 안 사길 잘한 것이, 한국은 아직도 화석연료에 너무나도 크게 의지하고 있고, 에너지에 관해서는 너무나 구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성장세도 좋고, 활력이 좋아 저력이 있는 편이지만, 환경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친환경 에너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미세 먼지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면서, 한국은 왜 아직까지도 석유나 석탄같은 구식 에너지에 집착하는지?

 

 풍요로운 공유 지향 사회

 

제러미 리프킨이 예측한 나머지 공유 사회나, 풍요의 경제 개념에 대해서는 뭐라 말하기 힘들다. 이웃끼리 중고 물건을 사고 파는 당근마켓, 시에서 운영하는 공용 자전거, 전동킥보드의 유행 정도가 그 공유사회를 보여주는 한 부분이 될 수 있을까?

 

그의 말대로 한계비용은 줄었지만, 예상치 못한 부가적인 비용이 발생하고 있어서 미래에도 더 풍요로운 사회가 될지 잘 모르겠다. 온라인 수업이 늘어서 교육비용이 감소하긴 했지만, 학교를 가지 못해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어서 갖는 외로움이나 집단 스트레스도 새로운 형태의 비용이기 때문이다.

 

한계비용이 제로가 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박리다매로 물건을 판다는 것과 비슷하다. 시장에 더 많은 생산자가 뛰어들고, 생산이 쉬워져 그 비용이 적어지지만, 동시에 마진도 적어진다. 생산자는 꾸준하게 많은 컨텐츠를 작성해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시장에 생산자가 많으니 자연 가격은 낮춰지겠지만 결국 소비자가 찾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그래서 한계 비용이 적어지는 것이 과연 마냥 좋을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천천히 한 걸음씩,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겠지.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는 코로나 이전 시대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정말 제러미 리프킨의 말대로, 사람들이 수평적이고 공유하는 걸 기뻐하며, 협동하고 환경을 중시하는 사회가 올까? 과히 낙관적인 상상이 아닐 수 없지만, 그의 말대로 미래에 유토피아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포스팅은 책을 읽고 난 후의 개인적인 느낌이고, 저는 학술적, 경제적 판단이나 자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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