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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2021 수능 국어, '사막을 건너는 법'과 주입식 교육

by 밀리멜리 202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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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치른 지는 오래되었지만 영어학원 강사로 꽤나 오래 일한 탓인지 수능이 끝나면 꼭 영어 문제를 한번씩 풀어본다. 올해는 읽을거리가 없나 싶어 국어문제도 다운받아서 한번 보았다. 다 풀진 않고, 문학 분야에서는 어떤 글이 나왔는지 궁금해서 문학부터 읽어 보았다. 수능에 출제되는 글은 꽤 읽어볼 법 한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학자 중의 학자들이 선정한 글일 테니까.

 

2021 수능 국어에 출제된 문학작품은 서영은 작가의 '사막을 건너는 법'이라는 단편소설인데,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담없이 읽어보니 재미있고 잔잔하게 충격이 오는 글이다. 이것도 반전 매력이 있는 글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는 베트남 전쟁에 나가 무공훈장을 받고 배를 타고 고국에 돌아온다. 군을 전역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야심, 꿈과 낭만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일상 생활은 그의 기대와 크게 달랐고, 결국 '나'는 일상 생활에 권태로움과 허무를 느끼게 된다. '나'는 전쟁에서 있었던 일을 애인 나미에게 말해보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나미조차도 그의 속을 이해할 수가 없고 결국 그들은 헤어진다.

 

수능 국어에 출제된 부분을 인용한다.

 

나는 다음과 같이 그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D 고지에서 전투 중인 ○○ 연대 근처까지 물을 실어다 주라는 명령을 받았어. 음료수가 떨어져서 전 연대원이 전투는 고사하고 타는 듯한 갈증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이었어. T에서 거기까진 팔십 킬로 거리였지. 나와 한병장은 밤중에 급수차를 몰아 T를 떠났어.

한 치 앞도 가릴 수 없는 어둠과 정적. 목쉰 듯한 엔진 소리는 어둠과 정적의 벽에 부딪혀 바로 우리의 귓가에서 부서지고, 부챗살 모양으로 어둠이 지워진 헤드라이트의 반경 속에선 사물이 극도로 정밀해져 마치 입체 영화에서처럼 눈 속으로 뛰어들었지. 그 정밀함이란 길바닥에 뒹구는 돌에 묻은 티, 풀포기에 매달려 잠자는 벌레 따위의 미세한 것들 까지도 죄다 눈에 잡히는 듯했어.

나는 온갖 사물들이 바로 내 심장에 맞닿아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을 이전엔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어. 이따금씩 여우나 늑대 따위들이 길을 횡단하여 쏜살같이 사라지곤 했어. 어둠 속에서 한가로이 떠돌던 나방이 떼들은 갑작스런 불빛에 방향 감각을 잃고 윈도에 머리를 부딪혀 빗방울 처럼 떨어져 죽었고.

나는 운전하고 있는 한병장의 팔을 건드리며 유리창을 가리켰지. 그는 겁에 질린 해쓱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 곁눈질했을 뿐이야. 그렇지, 혈관 속을 움직이는 피의 선회 마저 느낄 듯한 이 비상한 감각, 그리고 심연에서 샘처럼 솟아 오르는 넘칠 듯한 생동감이 없이는, 저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나방이 따위야 아무것도 신기할 것이 없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혼자서 빙긋 웃었어.

서영은, 사막을 건너는 법.

 

어휴, 내가 2021 수능을 치는 수험생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뭔가 영화 <시카리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긴장감. 내가 수능 시험장에서 이 글을 처음으로 읽었다면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문제 푸는 걸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현장에서 느끼는 생동감

적에게 들키면 바로 공습세례가 이어지는 죽음에 가까운 상황에서, 급수차로 물을 나르는 임무를 맡았다. 인간의 생존 본능인지, 이 때 '나'의 모든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모든 사물이 입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각이 정밀해지고 생생해진다. 사물이 심장에 맞닿아 있는 것처럼 예민해지고 혈관 속에 피가 도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다. 아마도 아드레날린이 극도로 치솟으면 사물이 이렇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일부러 위험한 것을 찾아다니거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며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드레날린 정키라는 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런 위험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익스트림 스포츠

그는 적의 공습세례를 받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겁에 질린 한병장에게 "전혀 무섭지 않다"라고 말하고, 오히려 "생명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음... 이렇게 보니, 아드레날린 정키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애인 나미도 무시한 그의 전쟁 경험을 듣고 있노라면, 그가 왜 일상생활에 복귀해서 왜 그렇게 허무함과 권태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 전쟁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일상 생활은 너무나 무의미하고, 흥미도 관심도 없으며, 나날이 권태스럽고 짜증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이 발췌된 부분의 주제는 수능 23번 문항에 나온 것처럼 "일상을 권태롭고 짜증스럽게 느끼는 상황에서 ‘나미’를 만나 전쟁의 경험담을 전한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허무하고 권태롭다는 주제의 실존주의 소설이다.

 

 

그러나 25번 문항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감상한 내용 중 틀린 것을 고르는 문제였고, 답은 "④ 방향 감각’을 잃은 ‘나방이 떼들’이 차창에 ‘부딪혀’ 죽는 것을 목격하는 데에서, ‘나’가 전쟁의 실상을 깨달음으로써 체념적 현실 인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군." 이라는 선택지이다.

 

군인들이 나방처럼 덧없이 죽어나가는 전투 현장에서, 전쟁의 실상을 깨닫고 체념한다는 것이 출제자가 의도한 주제의식은 물론 아니다. '나'가 체념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터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복귀하고 나서부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4번 선택지를 고르고 정답확인을 했지만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든다.

 

이 문항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려운 문제도 아니고, 논란이 될 만한 다른 선택지도 없어서 4번이 답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이런 수능 문제는 뭔가 창의성을 억누르고 교육평가원이 정한 "주제의식"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이 글을 보고 나방이 떼가 차창에 부딪혀 죽는 것과 전쟁의 참혹함을 연결시키면 뭐 어떤가. 나는 오히려 이 선택지가 오답이 아니라 재미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 4번 선택지로 글을 썼다면 참신한 생각이라고 칭찬해 주고 싶다. 

 

어느 동료 강사는 나를 두고 '강사를 할 타입은 아닌것 같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나는 이런 주입식 문제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도 강사이고, 학생이 25번 문제를 틀려서 왔다면 아마 이렇게 설명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일상 생활에 허무를 느낀 거지, 전쟁의 참혹함에 체념한 게 아니야! 이건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실존주의와 맞지 않는 답은 정답이 아니지."

 

그래놓고 나는 내 생각과 말이 일치하지 않아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이게 무슨 셀프 괴롭힘인지.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이런 문제가 많다. 말로는 "이 글을 보고 느낀 감상"을 말하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들끼리 주제를 정해 놓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만 말해야 해, 알겠지?" 라고 하는 기분이 든다. 그게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이고 수능이라는 거겠지.

 

수능으로 밥을 벌어먹은 주제에 주입식 교육을 비난할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권위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눈치있게 잘 파악해서 그걸 때려 맞추는 것, 수능에서 그걸 원한다면 그 능력을 잘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수능에서 갈고 닦은 눈치로 사회 생활에 써먹으면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는 그런 사람을 인재라고 한다. 삼성이 원하는 인재상, 뭐 그런거 있잖아. 수능 잘 본 사람은 교육평가원이 원하는 인재상이나 다름없다. (오늘 내가 너무 빈정대는 것 같다면 널리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내 시가 수능에 출제되었는데 나는 모두 틀렸다"라는 최승호 시인의 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영화감독 히치콕의 손녀가 직접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쓴 레포트에 교수가 C학점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문학을 보고 느낀 감상에, 틀리고 맞는 게 어디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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