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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광대 - 햄릿의 요릭과 리그오브레전드의 요릭

by 밀리멜리 202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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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릿>에서의 광대, 요릭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5막 1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외젠 들라크루와 - 묘지의 햄릿과 호레이쇼

햄릿은 연인 오필리어가 미쳐서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의 장례식이 묘지에서 열리고 있었고, 햄릿은 호레이쇼와 묘지기가 죽은 연인의 무덤을 파는 장면을 보고 있다. 햄릿은 이 슬픈 현장에도 묘지기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일한다는 것에 놀란다. 그러다 묘지기가 광대 요릭의 해골을 발견하고, 햄릿은 그 해골을 보며 독백을 한다. 

 

아아, 불쌍한 요릭. 나는 그를 안다네 호레이쇼. 끝 없는 재담과 기막힌 상상력을 가진 친구였지. 천 번을 그의 등에 업혀 다녔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되어버렸다니,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치는군. 구역질이 날 것 같네. 여기에 달려있을 입술에 나는 얼마나 입을 맞추었을지 모르네. 좌중들을 웃음바다로 만들던 그대의 익살, 광대 춤, 노래, 신명나던 재담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건가? 

ㅡ 《햄릿》中

 

햄릿이 해골을 들고 독백하는 장면은 유명해져서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테마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영어 Fool의 의미

 

이 해골의 주인이었던, 광대는 도대체 무엇일까?

 

광대는 영어로 Jester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clown, joker, fool이라는 단어도 광대를 뜻한다. 당시 영국 왕실은 어릿광대를 고용해 음악을 켜게 하고, 저글링 같은 재주를 부리게 하거나 코미디를 선보이도록 했다. 광대가 그 코미디를 선사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속이거나(fool), 놀려서(fool)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비록 광대를 바보(fool)라고 부르며 무시하기는 했지만, 사실 광대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었다.

 

타로카드 - 광대

그래서 fool는 명사로 하면 바보, 광대라는 뜻이지만, 동사로 하면 '바보로 만들어 놀리거나 속이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동사의 의미도 중세시대 광대가 하던 일과 관련이 있다. 또한, 만우절에 속은 사람을 April's fool이라고 한다. 만우절에 속아 모두를 즐겁게 해 준 광대와 같다는 의미이다.

 

 

 광대(Joker)의 권력

 

사람들은 광대를 천시하며, fool이라 부르고 무시했지만 사실 문학에서 보이는 광대는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다. 아무에게나 막말을 할 수 있고, 심지어 그것이 왕이라고 해도 왕의 잘못을 꾸짖고 조롱할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는 광대가 리어 왕을 보고 어리석다며 신랄한 조롱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젠 광대짓도 못해먹겠어, 다들 나보다 더 바보 같으니."

 

왕이나 영주들은 광대의 조롱에 화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가 하는 말은 다 웃자고 하는 말이고, 현명한 광대의 뼈 있는 농담에 화를 내고 죽여버린다면 정말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일이 된다.

 

다른 사람을 놀리기 때문인지 미움도 많이 받는다.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인공 리골레토도 광대이며, 그의 비극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웃은 것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광대가 잘 놀릴수록 더 인기가 많고, 광대가 하는 말은 예외적으로 허용이 된다. 농담이기 때문이다. 

 

카드의 조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광대가 정말 많이 등장하는데, 셰익스피어가 활동할 당시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가 광대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1세가 직접 셰익스피어에게 광대에 대한 희극을 하나 지어달라고 부탁한 것도, 광대가 인기를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농담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조커(Joker)가 카드놀이에서는 예외적으로 아무것이나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패가 된 것이 아닐까? 

 

 

 공포와 연결된 속성

 

광대공포증(Coulrophobia)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광대는 웃음을 준다는 속성과는 다르게 공포심을 조장한다. 그것은 또 셰익스피어 시대의 광대라는 직업 특성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중세 유럽에서는 광대가 그저 재담꾼 일만 한 것이 아니라, 교회지기 일도 겸했고 자연스럽게 교회의 묘지기 일도 함께했다. 햄릿에서 오필리어의 묘지를 파는 묘지기들도 다 원래 광대들이고, 해골이 된 요릭도 역시 광대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요릭.

심지어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나오는 챔피언 요릭도 죽은 자를 인도하는 묘지기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솔직히 이 요릭이 셰익스피어에 나온 그 요릭과 관련이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무래도 광대 샤코라는 캐릭터가 따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이름이 같고 똑같이 묘지기라는 것뿐이지만, 게임 개발자들이 햄릿을 읽고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참 재미있다.

 

농담을 하며 사람들을 웃기는 가장 희극적인 자리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가장 비극적인 자리, 둘 다 광대가 함께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입체적인 광대의 모습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그토록 많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희극에도 비극적 요소가 많고, 비극에도 희극적인 요소가 많다. 희극과 비극이 섞인 모습이 바로 광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광대가 죽음의 이미지와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피에로가 무섭게 표현되고 <배트맨>의 조커는 농담을 하면서도 무섭게 묘사된다.

 

"Why so serious?"

- 다크 나이트

 

조커가 말한다. 왜 그렇게 심각해? 다 웃자고 하는 일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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