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컬쳐리뷰

오페라 <리골레토> - 충격먹지 마, 중세 유럽의 19금 막장을 보여준다.

by 밀리멜리 2020. 10. 3.

반응형

혹시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오페라 복스>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30분 가량의 짧은 시간에 독특한 애니메이션과 영어 오페라로 구성된 '마술 피리'나 '카르멘'같은 작품을 감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유튜브 댓글을 보니, 요즘도 음악 선생님들이 이 영상을 보라는 과제를 주는 모양이다.)

 

갑자기 옛 추억이 생각나 오페라 복스를 검색해 조금은 생소한 '리골레토'를 보았는데, 다 보고 나서 충격에 휩싸여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오페라가 이런 내용이었다고? 어떻게 미성년자였던 나에게 이런 내용을 보여줄 수 있었지? 어떻게 이 충격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누군가 현대에 이 작품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검열에 시청자 비판이 판칠 정도일 것이다. 매운 맛 중의 매운 맛, 오페라 <리골레토>를 살펴보자.  

 

오페라 <리골레토>의 한 장면 (구글 이미지)

 

1. 충격적인 막장 전개

 

'만토바 공작'은 호색한이다. 아니, 이 인물을 호색한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오페라복스의 설명에서는 그의 생활을 'debauchery'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음탕, 음란함, 매춘, 타락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공작은 귀족의 딸, 평민의 부인, 지나가는 여자 등 가리지 않고 어느 여자든 자기 마음에 들면 손에 넣어버린다. 말이 그렇지, 반은 강간이나 다름없다. 신분제 시대에 살면서 막강한 권력과 부를 가진 공작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주인공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작의 광대로 일하며, 만토바 공작의 유혹에 여자들이 넘어갈 때마다 그 가족이나 남편을 놀리며 조롱한다. 배경에서 이미 이 시대가 얼마나 광기에 휩싸인 시대인지 알 수 있다. 아내를 눈 뜨고 뺏긴 남편을 위로하지는 못할 망정 조롱하다니?! 그리고 그게 직업이야? 

 

여느 날처럼 만토바 공작은 어느 백작의 딸을 유혹한다. 이 백작은 화가 끝까지 뻗쳐 공작의 성을 찾아오지만 돌아오는 것은 광대 리골레토의 놀림 뿐이다. 백작은 감히 높은 신분인 공작은 건들지 못하고, 광대 리골레토에게 너도 나 같은 꼴이 될 거라 저주한다.

 

이 광대 리골레토에게는 아름다운 '질다'라는 딸이 있는데, 혹시라도 저주가 현실이 될 것을 두려워한 아버지는 딸을 집에 두고 꽁꽁 감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부질없이, 질다는 만다바 공작을 만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공작을 추종하는 귀족들은 질다를 납치할 계획을 짠다. 이 귀족들은 리골레토를 속여 질다의 방으로 가는 사다리를 잡게 만들고, 결국 질다를 납치한다.

 

납치된 질다는 공작의 성에 갇혀, 말 그대로 성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아버지 리골레토는 저주가 사실이 된 것을 알고 미쳐 날뛸 지경이다. 그는 청부살인업자가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공작에게 복수를 하기로 다짐한다. 리골레토는 공작의 성에서 겨우 딸을 구해내는 데 성공하고, 딸과 함께 그 킬러 '스파라푸칠레'의 집으로 향한다.

 

우연하게도 그 킬러의 집에 만토바 공작이 머물고 있었다. 그는 호색한답게 자기 궁에 가둬놓은 질다는 벌써 잊고, 킬러의 여동생을 유혹하는 중이었다. 이 킬러의 여동생 '막달레나'를 유혹하는 노래가 그 유명한 '여자의 마음 (La donna è mobile)'이다. 이 킬러의 여동생은 공작을 바람둥이라며 놀리고 외면하지만, 공작은 '여자의 마음은 깃털과 같으니, 지금은 튕겨도 결국 마음을 바꿀 것이다'라는 개소리를 노래한다.

 

여자의 마음 (La donna è mobile)

www.youtube.com/watch?v=8A3zetSuYRg

 

이를 지켜보던 리골레토는 킬러에게 공작 살인을 요청하고 돈을 건넨다. 하지만 킬러의 여동생 막달레나는 공작을 죽이지 말자고 설득하고, 킬러는 누군가 공작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대신 죽이기로 한다. 이윽고 질다가 공작을 찾으러 오고, 킬러는 망설임없이 질다를 칼로 죽여버린다.

 

이 사실을 모르는 리골레토는 킬러가 건네준 자루 속에 담긴 시체가 공작이라고 믿고, 그 시체를 처리하러 떠난다. 하지만 이 시체를 버리는 길에 어디선가 공작의 신나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여자의 마음은 깃털과 같으니...' 공작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시체를 확인하니, 그 자루에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이 죽어 있던 것이었다. 

 

2. 미저리와 아이러니

 

이 오페라는 베르디가 빅토르 위고의 희곡을 보고 그를 각색하여 만든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은 잘 몰라도, 그 유명한 <레 미제라블>은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평민의 삶은 미제라블, 미저리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귀족제의 타락과 비참함을 고발하는 희곡이며, <리골레토>에서도 그 비참함을 엿볼 수 있다.

 

귀족이 평민의 딸이나 아내를 납치해가도 아무 말 할 수 없다. 리골레토를 저주한 백작은 그나마 백작 신분이 있으니 항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골레토의 직업인 광대라는 직업 자체가 미저리이다. 공작을 그저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평생을 노동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요즘으로 치면, 슈퍼 스타가 한 사람을 위해 평생 동안 공연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렇게 비교하는 게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당시 유럽의 귀족 타락과 비참함 - 미저리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 작품 내에 보이는 아이러니 때문에 리골레토의 절망, 그의 미저리는 바닥으로 치닫는다. 백작의 저주인 '너도 아버지의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를 들은 이후로 리골레토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집의 모든 창문을 꽁꽁 닫아두고, 딸에게 외출 금지를 시킨다. 그래도 안심할 수가 없던 리골레토는 공작의 추종자들에게 속아 자신의 딸을 납치하는 걸 돕는다.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복수를 계획했지만 그 복수는 그저 그런 실패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는 것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삶이 이럴 수가 있는가? 마지막 딸의 시체를 확인하고, 그는 절규한다. 아! 저주로다!

 

3. 여자의 마음은 깃털과 같으니... (La donna è mobile)

 

"시간 내주오, 갈 데가 있소. 거기가 어디오? 하이마트. 아니 그럼 지금, 결혼하잔 얘기? 좋아요 가요~ 딱 걸렸네!"

 

이 CM송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나와 같은 세대일 것이다. (참고링크)

 

이 광고에서는 한 커플이 나와 이 노래를 부르며, 마트에서 전자제품을 사서 혼수품으로 장만하자라는, 한 마디로 프로포즈 노래이다. 정말 캐치하고 리골레토 오페라에게 큰 명성을 가져다 준 노래이다. 정말 훌륭한 노래임은 틀림없지만, 이 광고를 만든 사람은 전국민을 놀리려고 한 게 아닐까? 

 

상술했지만 이 노래는 만토바 공작이 킬러의 여동생 막달레나를 유혹할 때 부르는 노래이자, 마지막 장면에서 리골레토가 딸의 시체를 확인하기 전에 깔리는 노래이다. 이 광고 제작자는 어떻게 사랑스러운 예비부부에게 바람피우자는 노래를 부르게 해서 프로포즈를 하는가? 이 노래를 제일 부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마지막 '딱 걸렸네'라는 말은 둘이 연애를 하는 걸 들킨 게 아니라, 바람피우다 들킨 것을 의도한 게 아닐까? 결혼하고, 바람피워서 이혼하고, 또 결혼해서 혼수 사러 오라는 말은 아니겠지? 내가 너무 멀리 나갔다. 그치만 너무 충격적이라고! 이 노래가 아름다운 사랑노래가 아니라, '이 여자도 내꺼, 저 여자도 내꺼'라는 말이었다니.... ㅠㅠ

 

4. 마지막으로

 

이 <오페라 복스>를 보고 난 감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빅토르 위고가 원작이라고? 빅토르 위고같은 거장이 이런 막장 이야기를 썼단 말이야? 하고 놀랄 수도 있겠지만, 내재된 테마는 그의 작품들과 일맥상통한다. 18세기 유럽은 미친 시대였다. 귀족들의 탄압에 참다 참다 못 이겨 혁명이 일어난 시대이다. 그 시대를 살던 비참함을 이렇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극 중에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 공작 만토바, 그걸 부추기고 조롱한 리골레토, 사람을 죽이는 청부 살인업자도 다 살아남았지만, 아름답고 순수한 질다만이 죽었다. 왜 가장 순수한 존재가 죽어야 하는가? 정말 그 시대가 너무도 비참했기 때문이다.

 

만토바 공작이 온갖 음란의 구렁텅이와 타락에 빠져 있어도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를 추종하거나 그를 즐겁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였고, 그렇지 않다면 뒷골목에서 청부 살인업자와 같은 황량한 삶을 살게 된다. 이 혼돈의 시대에서, 질다처럼 순수한 사람은 곧 죽게 되는 그런 절망적인 시대인 것이다. 

 

* 여기에 '오페라 복스'의 <리골레토>를 첨부한다. 한글 자막이 달려 있어 내용 이해하기에 좋다.

www.youtube.com/watch?v=YXFy9IYMeE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