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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

유튜브 맞춤광고의 심리학 - 내 취향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by 밀리멜리 202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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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보다 한 영상광고를 보게 되었다. 예쁘장하고 똑똑한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애가 유튜브 브이로그를 찍는 듯한 앵글로 카메라를 보며, '이 앱 안 쓰면 정말 뒤처진 거야!'라고 광고를 한다. 나는 분명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광고가 떠서 스킵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광고조차 유튜브 영상과 흡사해서 깜짝 놀랐다.

 

몇 달 전, 유명 유튜버들의 뒷광고가 논란이 되었고, 그 후로 브이로그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유튜버들이 '이 영상에는 광고가 포함되어 있다'라는 표시를 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제는 브이로그에서 간접광고를 하는 게 아니라, 직접광고에서 광고모델이 유튜브 영상을 찍는 듯한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광고와 유튜브 영상이 어지럽게 섞여, 경계가 모호해졌다. 너는 광고야, 아니면 브이로그야?

 

아무래도 광고가 세상의 트렌드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다 보니, 광고를 보면 세상이 변하는 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잠깐, 유튜브 광고는 아무래도 보는 사람을 타겟팅해서 광고하다 보니, 브이로그를 자주 보는 나에게 브이로그식 광고가 뜬 건 놀랄 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브이로그를 좋아했더라? 이거,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거 맞아? 유튜브, 니가 나더러 이거 좋아하라고 세뇌시킨 건 아니지?

 

지금 내가 개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심리학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자. 유튜브는 말한다. 이것 봐, 이게 최근 트렌드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안 좋아하다니, 너는 참 이상하다. 맘에 들지 않아? 그래도 한번 더 봐! 아마 이것 중 하나는 네 취향일걸?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들이 사실은 내 취향이 아니고, 유튜브가 좋아하도록 만들어낸 건 아닐까? 그래서 좋아하게 만들고, 자신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게 하고, 결국에 사용자들이 더욱더 유튜브에 중독되도록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난 십년 간 kpop을 거의 듣지 않았다. 길거리를 걷다, 혹은 카페에서 어쩔 수 없이 우연히 들었지, 내가 찾아보거나 다운로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 격리로 집에서 주구장창 유튜브를 보게 되면서, 블랙핑크의 팬이 되었다. 팬이 되었다는 걸 밝히는 게 별로 부끄럽지는 않다. 무언가를 봐도 심드렁했던 내가 열정적으로 누군가를 찾아보고 즐거움을 느끼고 공감하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 kpop이 십년 전보다 발전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장르를 좋아하게 된 건 무언가 내게 변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나의 내적 성장이나 경험에서 오는 변화가 아니라, 유튜브에 자주 노출되어 내 가치관과 취향이 바뀌어서 온 것이 아닐까?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들이, 정말 내 의지로 좋아하는 것들일까? 내가 지금 소비하는 게, 정말 내가 사고 싶은 거였나?

 

유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로니 챙(Ronny Chieng)은 그의 쇼에서 인터넷 쇼핑이 무분별하게 넘쳐나는 세태를 꼬집으며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생각 나기만 하면 다 사야 합니다. 아무리 짧게 스치는 생각이라도, 다 사야 해.
나 펜이 하나 필요하거든. 펜 상자는 필요 없는데, 펜 하나가 필요해. 근데 펜을 박스에 뽁뽁이랑 같이 넣어주고, 그 박스를 더 큰 박스에 넣으면 좋겠어. 배송은 빨라야지. 지금 필요해! 2시간만에 배송해. 지금 배송해! 내가 구매 버튼을 누르면 내 손에 택배가 들려있으면 좋겠단 말이야. 지금 배송하란 말야! 당일 배송? 으에에에엑, 못참아. 당장 배송해!
차라리 그 전에 배송해 주세요. 내가 원하기 전에 배송해 주세요. 요즘 시대에, 내가 사고 싶은 것도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까? AI가 내 정신을 대신하게 만듭시다. 그래서 나 하고 싶은 거나 좀 하게요. 내가 원하기 전에 좀 알아서 배송해달라구요."

 

내가 원하기 전에 배송해 달라고. (유튜브 - 로니 챙)

  

브이로그도 케이팝도 다 유튜브의 덕을 본 요소들이다. 이걸 좋아하게 된 건 정말 내 결정일까? 유튜브의 먹방이 재미있고 좋은데, 낯선 사람이 뭘 먹는 걸 보는 게 좋아진 것은, 내 원래 취향인가? 별 광고 하나 본 걸 가지고 주절주절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볼 수도, 유튜브 덕분에 취향이 생겨서 뭐가 나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동화 '햇님과 바람'에서, 해와 바람은 서로 누가 나그네의 외투를 먼저 벗기나 내기를 한다. 바람은 강압적인 힘으로 외투를 벗기려 하지만 실패하고, 해는 볕을 쪼여 나그네가 스스로 벗게 만든다. 나는 유튜브라는 햇볕에 쪼인 나그네가 된 기분이다.

 

가끔은 정말, 구글과 유튜브의 AI가 합심해서 나 대신 좋아하고 싶은 것을 정해주는 느낌이다. 뭐, 그게 그렇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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