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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

결혼 후 바뀌는 여자의 성(姓)에 대한 단상

by 밀리멜리 2020.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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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인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상하다, 서양에서는 결혼하면 여자가 성을 바꿔야 해?"

"강제적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보통 바꾸지."

"왜 여자만 바꿔? 그건 좀 별로다."

"안 바꾸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이것 봐, 만화 <심슨 가족> 중에 마지도 주인공인데 마지 심슨이 아니라 마지 부비에(결혼 전 이름) 라고 부르면, 그건 The Simpsons가 아니잖아! 한 가족이니깐 한 이름을 쓰는 게 좋지, 엄마만 이름이 다르면 소외되는 거잖아! 엄마만 어떻게 왕따시킬 수가 있어?"

"그게 왕따인 건가?"

"그렇지, 가족 중에 혼자만 이름이 다르잖아."

 

 

뭔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딱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걸 소외되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러고보니 이 제도가 서양 국가들의 문화라고 하기에도 뭣한 것이, 옆 나라 일본도 여자들이 결혼하면 성을 바꾼다. 옛날에 나누었던 이 대화가 떠오른 건 지금 읽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의 한 대목 때문이다.

 

"그렇다면 야마모리 다쿠야의 결혼 전 성이 이시쿠라라는 말인가? 
이시쿠라 형제가 야마모리 일가의 영향력 아래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야마모리 다쿠야'는 남자이고, 이 남자의 결혼 전 성이 '이시쿠라'라고 밝히고 있다. 안그래도 낯선 일본 이름이 열몇 개씩 나오는 추리 소설인데, 결혼하면서 성을 바꿨다는 문장을 읽고 이 다쿠야라는 사람이 여자였는지 책을 다시 처음부터 되짚어봐야 했다. 결국 다시 읽어봐도, 남자가 결혼하면서 성을 바꿨다는 말이었다.

 

엥? 여자만 성을 바꾸는 게 아니었구나! 검색을 해보니, 일본에서는 부부끼리 같은 성을 쓰는 것을 의무화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어느 정도 자신의 선택에 맡겨두는 서양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결혼 시 성을 무조건 바꿔야 했던 것이다. 그건 혈통보다는 가문을 중요시하는 풍습 때문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성씨를 바꾸는 건 일본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에도 시대에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가문의 성씨를 모두 바꿔버렸다고도 한다. 정말일까? 분위기를 위해 성을 바꾼다고? 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이 '흠, 우리 집 분위기 좀 바꾸게 우리 가족의 성을 이 씨로 바꾸자! 이제부터 나는 이길동이다.'라고 한 거나 다름이 없잖아? 이게 정말 가문을 중시하는 게 맞나? 정말이라면 정말 근본 없는 풍습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군...

 

결혼을 하고 이혼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제도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유명인의 경우 원치않게 자신의 사생활이 밝혀진다. 학자의 경우, 자꾸 이름이 바뀌어 논문을 내도 연계된 연구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택배나 은행업무 서비스를 제때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가 훨씬 낫네, 저런 쓸데없는 문제들이 발생하니.

 

아무튼 신기했던 건 일본에선 남자가 데릴사위로 들어간 경우, 희귀하게 남자도 자신의 성을 바꾼다는 것이었다. 이 소설에 나온 '야마모리 가문'은 부자에 영향력 있는 가문으로 묘사되는데, 그래서 결혼 전 남자의 성이 달랐다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그 문제에 대해 알아놨으니, 다시 그 친구를 만나서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반박할 거리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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