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최고의 빌런 송으로 꼽으라 한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첫번째로 나는 라이온킹의 <Be prepared>를 꼽을 것이다. 이 노래가 디즈니 사상 가장 매력적인 악역, 라이온킹 스카의 그 섹시함을 있게 한 노래일 것이다.
어떻게 이 비열하고 오만한 사자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을까? 물론, 제레미 아이언스의 그 허스키한 섹시한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음색에 한층 매력을 더하는 것은 가사 속에 담겨 있는 예술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라이온 킹>이 셰익스피어 <햄릿>을 모티브로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햄릿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들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왕자가 아버지의 유령을 본다는 점이다.
햄릿이 서서히 미친 듯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햄릿이 죽은 아버지의 유령을 보기 시작하면서이다. 햄릿은 이때부터 아버지가 살해당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라이온킹에서는 오히려 고민하던 심바의 고민을 풀어주는 것이 아버지 모습을 한 구름이다. 아버지의 형상이 주는 메시지는 다르지만, 왕자가 죽은 아버지의 유령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점이 같다.
왕자의 삼촌이 사악한 계획을 짠다. <햄릿>에서 덴마크의 왕을 죽인 것도, 다름 아닌 햄릿 왕자의 숙부 클로디어스였다. 숙부는 독약으로 왕을 죽이고 그 자신이 왕의 자리에 앉은 것이다. 라이온킹에서도 왕이었던 무파사를 죽인 것이 숙부 스카였다. 결국 그런 상황 때문에 괴로워하고 도덕적 판단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바로 햄릿, 그리고 심바이다.
자기 숙부가 아버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비극적인 상황 앞에, 왕자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우리 아버지가 정말 동생에게 당했을까? 두 왕자는 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 먼저 햄릿은,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고뇌하며 생각에 잠긴다. 이 가혹한 현실이 정말 진실인지, 나는 숙부를 죽여야 하는 것인지, 고민은 끝이 없고 결국 미쳐버린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 고민 끝에 나온 유명한 햄릿의 대사가 바로 이것이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이온킹은 그딴 고민따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피를 한다. 심바가 언젠간 왕이 될 거라며 그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른 것 치고, 심바는 너무나도 쉽게 프라이드랜드를 떠나 하쿠나 마타타, 하면서 고기도 먹지 않는 방랑자 생활을 한다. 그러다 결국 왕자와 삼촌이 왕위를 두고 다툰다.
이런 플롯 덕분인지 이 노래의 가사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구절을 연상할 정도로 섬세하게 쓰여있다. 라임을 지키고, 가사의 운율이 딱딱 맞는다. 가사에 쓰인 어휘도 현대 영어라기보다는 고풍적이다. 이 디즈니 빌런 송, <Be Prepared>의 가사는 셰익스피어 시대에 쓰인 영시처럼 너무나도 시적이다.
Be Prepared
I never thought hyenas essential
They're crude and unspeakably plain
But maybe they've a glimmer of potential
If allied to my vision and brain
하이에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거칠고 무지하게 멍청하잖아
하지만 가능성은 있겠어
내 계획성과 두뇌를 합친다면...
이 부분은 영상에서는 빠졌지만, 원곡 가사의 한 부분이다. 스카의 엘리트주의가 잘 엿보이는 부분인데, 스카는 고등 교육을 받은 똑똑하고 야심있는 왕족이다. 하지만 사자 무리들이 무파사를 추종하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들의 적인 하이에나에게 기대어 쿠데타를 준비하려 한다. 하이에나들이 멍청하더라도, 자신의 두뇌라면 쿠데타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스카의 자신만만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I know that your powers of retention
Are as wet as a warthog's backside
But thick as you are, pay attention!
My words are a matter of pride
너희 기억력이 안 좋은 건 알고 있었지
멧돼지 궁둥이처럼 끔찍하잖아
하지만 그렇게 둔할수록 정신 차려!
자존심이 걸린 문제란 말이다
스카의 오만함이 더욱 더 드러난다. 그의 생각대로, 하이에나는 무지하고 멍청하다. 하이에나가 정신없이 뜯는 뼈다귀를 날려버리며 정신차리라고 소리치자, 하이에나는 바로 충성 자세를 취한다. 멍청하지만, 그래서 더 조종하기 쉽겠다 생각하는 스카의 얼굴에 미소가 만면한다.
여기 한국어로는 번역할 수 없는 말장난이 있는데, 마지막의 pride가 그것이다. Pride의 기본 뜻은 자존심이지만, 사자 무리라는 뜻도 있다. 라이온킹에서 무파사와 심바가 다스리는 왕국의 이름이 바로 '프라이드 랜드'이다. 그러니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왕국이 걸린 문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It's clear from your vacant expressions
The lights are not all on upstairs
But we're talking kings and successions
Even you can't be caught unawares
그 멍한 표정을 보니 뻔하구만
눈이 흐리멍텅하잖아
하지만 이건 왕위계승 문제라고
너희같은 애라도 모를 순 없을 거다
계속해서 하이에나의 무지함을 조롱하고 있다. 'The lights are not all on upstairs (천장에 조명이 없나)'라는 가사는, 조명이 없어서 그렇게 눈이 흐리멍덩한 것이냐고 비꼰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라는 문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멍청해도 알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하는 스카.
So prepare for a chance of a lifetime
Be prepared for sensational news
A shining new era is tiptoeing nearer
(And where do we feature?)
Just listen to teacher
그러니 일생일대의 기회를 기다려라
엄청난 소식이 들려올테니
빛나는 새 시대가 조심스레 다가오니
(우리가 뭔 상관이야?)
잠자코 선생님 말씀 잘 들어봐라
이 장면에서 스카가 아랫사람 다루듯 하이에나의 볼을 꼬집는데, 그러자 하이에나가 볼을 문지르며 스카를 노려보는 표정을 한다. 이것이 스카의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이 되기도 한다. 다른 부분도 라임이 좋지만, 이 가사에서 feature와 teacher의 라임이 정말 기발하다.
I know it sounds sordid but you'll be rewarded
When at last I am given my dues!
And in justice deliciously squared
Be prepared!
비열하게 들리긴 하지만 너도 보상을 받을테니
내 마땅한 왕위를 이어받게 되면
달콤한 정의로 심판할테니
준비하라!
하이에나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할지도 모르겠다. 프라이드 랜드의 왕 무파사와 제일 사이가 좋지 않은 적들이 하이에나들이니, 왕이 죽거나 말거나 이들이 무파사의 동생, 스카를 도울 이유는 없다. 하지만 스카는 교묘하게 하이에나를 설득해 그들을 자신의 아군으로 만든다. 'Due'는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라는 의미로, 이 단어에서 스카의 계획이 얼마나 야심찬지 엿볼 수 있다.
- Yeah! Be prepared, we'll be prepared! For what?
For the death of the king
- Why, Is he sick?
No, fool! We're going to kill him, and Simba, too
- Great idea! Who needs a king? No king, no king!
Idiots! There will be a king!
- But you said-
I will be king!
Stick with me and you'll never go hungry again!
- Yay, all right! Long live the king!
- Long live the king!
- 맞아! 준비해! 준비할게! 근데 뭘?
왕의 죽음을 준비해야지
- 왜, 왕이 아프대?
아니, 멍청아! 우리가 왕을 죽일거야. 심바도 죽일 거고.
- 와 좋다! 누가 왕이 필요하대? (라라라) 왕을 없애자!
바보들아! 왕이 왜 없어!
- 그치만 방금...
내가 왕이 될 거다.
내 옆에 있으면 다시는 굶어 죽지 않으리라!
- 예! 알겠어! 국왕 폐하 만세!
- 국왕 폐하 만세!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는 하이에나를 설득하는 것은 정말 쉬웠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는 하이에나들은 나치 군대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스카는 사악한 히틀러가 된다.
It's great that we'll soon be connected
With a king who'll be all-time adored
경애하는 국왕 폐하가 될 분과
연합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Of course, quid pro quo, you're expected
To take certain duties on board
The future is littered with prizes
And though I'm the main addressee
The point that I must emphasize is
You won't get a sniff without me!
물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지
해주어야 하는 일이 있다
머지않아 보상으로 가득 차겠지
내가 그걸 다 먹긴 하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나 없으면 음식 냄새도 못 맡을 줄 알아라!
So prepare for the coup of the century
Be prepared for the murkiest scam
Meticulous planning tenacity spanning
Decades of denial is simply why I'll
Be king undisputed, respected, saluted
And seen for the wonder I am
그러니 세기의 쿠데타를 준비해라
가장 수상쩍은 사기극을 준비하는 거지
계획은 치밀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내가 부정당한 수십년의 세월들
그게 바로 내가
인정받고 존경받고 칭송받는
경이로운 왕이 되는 이유로다
We'll have food! Lots of food!
We repeat! Endless meat!
먹을 수 있다! 음식이다!
다시한다! 고기 무한으로!
Yes, my teeth and ambitions are bared-
Be prepared!
내 이빨과 야욕이 드러났다
준비하라!
마지막 장면이 무척이나 웅장하다. 히틀러나 선동가 괴벨스 같은 모습으로, 스카는 그르렁거리며 자신의 야심을 노래한다. 왕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엄청난 권력을 가진 것처럼 쿠데타를 준비하라며 연설한다. Scam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말 그대로 사기극을 뜻한다.
그 사기극이란, 스카가 심바를 절벽으로 불러내어 그곳에 있으면 무파사를 기쁘게 할 거라고 속인 사건이다. 심바는 그의 말을 듣고 절벽으로 향하고, 하이에나를 시켜 누 떼가 심바를 덮치도록 했다. 심바가 위험에 처한 것을 발견한 무파사는 아들을 구하러 가고, 심바를 절벽 위로 구해낸다. 그 후 힘겹게 절벽을 올라가는 무파사를 추락사시켜 살해하고 사고로 위장한다.
작은 scam이라는 가사가 다음의 큰 사건의 복선이 되니, 노래에 많은 것을 담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재미있는 것은 하이에나의 반응이다. 스카는 준비하라고 준비하라고 목이 터져라 연설하는데 하이에나들은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오직 먹을꺼! 먹자! 먹을꺼! 이렇게 합창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반응은 또 스카의 죽음에 또다른 복선이 된다.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다른 나라의 정치적 쿠데타가 어떻고, 인권이고 민주주의가 어떻고 관심 없지만, 오직 돈과 경제를 위해서 그 나라와 연합을 맺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라이온킹>에서의 하이에나는, 정말 그 탐욕스럽고 멍청한 트럼프의 나라와 닮지 않았는가? 아님 말고.
www.youtube.com/watch?v=zPUe7O3ODHQ&ab_channel=Disney
(이미지 출처: 디즈니 유튜브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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