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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영화 위플래쉬 - 열정과 광기 사이

by 밀리멜리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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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로 가는 길은 고달픈 법

 

영화 위플래쉬는 꿈을 찾아 헤매는 한 노력형 드러머가 스승을 만나 광기와 환희에 찬 무대에서 연주를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제목 위플래쉬(Whiplash)라는 단어가 암시하듯이, 채찍(whip)으로 휘갈겨가며(lash) 무대에 오르는 주인공들의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주인공 앤드루는 미국 최고의 밴드라는 셰이퍼 음악학교의 스튜디오 밴드 멤버로 발탁되어 기쁜 마음으로 연습에 간다. 그러나 아, 첫날부터 밴드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누가 음정 빗나가는 소리를 내었느냐?

방금 음정 빗나간 자는 어서 자수를 해라. 아무도 없어?
흠, 내 귀에 벌레가 들어갔나 보네. 다시 해볼까?

아니 잠깐, 내 귀는 멀쩡하네.
그럼 어떤 놈이 내 밴드를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 아니면 자기가 음정 틀린 줄도 모르는 거야?
음정 틀린 놈이 틀린 줄도 모르고 있다면 더 최악인데.

너냐? 아님 너? 아니면 너?

제발 너는 아니겠지, 트럼본.
너 음정 틀렸다고 생각하니?

뭐해, 땅바닥에 초코바 떨어졌냐? 땅 보지 말고, 위를 봐. 나를 봐.

너, 음정 틀린 거 맞아?
맞아요...

그럼 왜 그렇다고 얘기를 안해!!!!!

이렇게 플레처 선생은 트럼본 연주자를 윽박지르고 주인공 앤드루는 첫 연습부터 겁을 먹는다. 여기에 반전이 있었으니, 정작 음정이 틀린 것은 다른 연주자였고 선생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틀렸는지 아닌지를 모르는 것도 나쁘다며 그를 쫓아낸다. 옛날 공포 분위기 조성하는 무서운 선생님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여하튼 이 선생 참 성격 안좋다.

 

내 템포에 맞추라고!

멤버로 합류한 앤드루 역시 이런 플레처 선생의 윽박지름을 제대로 겪는다. 템포를 잘 못 맞춘 앤드루에게 플레처 선생은 폭언을 내지르고, 심지어 그의 뺨을 때려가며 템포가 틀렸음을 상기시킨다. 이런 교육방식에 앤드루는 열받아 하고,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을 해 결국 메인 드러머 자리를 얻어낸다. 

 

앤드루가 연습을 하며 정말 손에 피가 나서 얼음물에 손을 담그는 장면이 있다. 위플래시가 비록 음악 영화이지만, 이런 장면들은 스릴러 영화 못지 않은 긴장감과 소름을 선사한다. 

 

 위플래시의 채찍질하는 교육 방식,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재즈는 좀 더 느긋하고 등받이에 등을 푹 기대어 듣게 되는 그런 느낌이다. 즉흥으로 합주와 잼을 하고, 즉흥으로 하다보니 안 맞는 부분이 자연히 있지만 그 불협화음이 점점 더 조화로워져서 아름다운 하모니가 될 때 선사하는 그 환희가 재즈의 느낌이 아니었던가? 무슨 재즈를 자로 재듯이 딱딱 맞춰서 그렇게 해?!

 

위플래쉬의 재즈는 물론 교과서적인 방식을 따른다. 한 치의 엇나감도 용납할 수 없는 엄격함과 완벽주의자의 강압이 느껴지는, 연주자라면 정말 숨막히는 방식이다. 플레처 선생은 연주자들의 천재성을 길러내기 위해서 인격 모독까지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정말 이런 교육 방식이 나쁘다고만 말할 수가 없는 것이, 청중이라면 갈고 닦아 완성된 작품, 그 완벽한 예술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혼자 즐기는 예술이 아니라, 남에게 선보이기 위한 예술이라면 완벽할수록 찬사가 나온다. 학예회도 아니고, 귀엽게 노력한다고 박수를 보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장면을 보며 5, 6년씩 연습생 생활을 하는 케이팝 아이돌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데뷔하기 전까지의 고된 평가와 연습 과정은 확실히 이 영화 위플래시의 교육방식과 비견될 만큼 비인간적이다. 그러면서도 완벽한 춤과 노래와 랩을 즐기는 건 또 나 자신이기도 하니, 과연 저 선생을 비난하기만 할 수 있을까?

 

새벽까지 계속된 연습에 드러머들이 모두 지쳐 있다.

 

 카네기 홀에서의 숨막히는 피날레

 

모종의 사건으로 선생 플레처와 학생 앤드루의 관계가 크게 엇나간다. 만약 둘이 갈등 없이 쭉 화목했다면 영화 위플래시는 그저 그런 해피엔딩 음악영화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플레처는 앤드루에게 망신을 줄 작정으로,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게 되었는데 드러머 자리가 비었으니 와달라고 부탁한다. 영광의 자리인 카네기 홀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은 앤드루는 기쁨에 차 연주곡인 <위플래시>와 <캐러반>을 연습하고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 플레처의 계략이었으니, 정작 무대에서 플레처는 다른 곡을 지휘하고 앤드루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무대를 망치고 만다. 이대로 싸늘한 반응만을 얻고 돌아설 것인가.

 

망신을 당한 앤드루는 포기하고 돌아가려다, 갑자기 뭔가 결심한 듯 무대로 오른다. 앤드루가 자리로 돌아오자 플레처는 놀란 표정을 짓고, 지휘자로서 밴드 소개를 한다.

 

앤드루는 플레처가 청중에게 소개말하는 도중에 드럼을 치기 시작해 플레처의 말을 끊는다. 멤버들과 플레처 모두 당황하지만, 화가 난 앤드루는 '내가 신호를 줄 테니 그떄 들어가라'라는 말만 하고 계속 드럼을 친다.

 

너, 눈을 도려내 버리겠어!

지휘자 신호 없이 멋대로 연주를 시작한 앤드루에게 눈을 도려내버릴 거라고 윽박지르는 플레처. 어마어마한 카네기 홀 무대의 실황 공연에서도 싸우는 둘의 모습이 가관이다. 앤드루는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표정으로, 플레처 얼굴 가까이에서 심벌즈를 위협적으로 쳐 그를 물러나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캐러반>을 시작한 밴드 멤버들. 음악은 점점 더 고양되기 시작하고, 앤드루는 광기어린 눈으로 자신의 실력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앤드루를 미워하던 플레처도 그의 노력에 감화되어 그의 큐를 따라가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긴장감이 영화를 지배한다. 

 

그렇지, 그거야!

이 피날레 부분은 영화 위플래쉬의 정수이다. 이 부분을 영화관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할 정도이다. 카네기 홀이라는 큰 무대의 긴장감, 날카롭게 울리는 드럼 소리, 예상치 못한 드러머의 이상 행동,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만한 광기어린 마지막 연주. 

 

플레처와 눈을 맞추며 광기의 연주를 하는 앤드루

혼자서 멋대로 시작했던 앤드루도, 결국에 지휘자 플레처와 교감하며 광기의 연주를 서서히 마친다.

 

이 마지막 장면만큼은 위플래쉬가 영화이고,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스릴이 넘친다. 특히, 앤드루가 지금까지 쌓였던 분노를 발악하듯 연주하며 풀어내는 것이 느껴진다. 어느 장면보다도 박진감이 넘치며,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해 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건가 싶을 정도이다.

 

아래 해당 장면을 링크했다.

 

위플래쉬 마지막 장면 - 캐러반 연주장면 (파트 1)

www.youtube.com/watch?v=ZZY-Ytrw2co&ab_channel=AcademyAwardC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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