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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퀘벡 욕(Sacre)에 담긴 독특한 퀘벡 역사

by 밀리멜리 2020.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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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쓰지만, 본토 프랑스에는 없는 특별한 욕이 있다. 어느 언어든 욕이 성적이거나 더러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반면, 퀘벡의 욕은 매우 종교적이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욕은 'vulgaire(불개)' 혹은 'gros mots (그로 모)'라고 부르지만, 퀘벡의 욕은 싸크(Sacre)라고 불린다.

 

싸크(Sacre)는 신성하다는 뜻이다. 욕이 신성하고 종교적이라고 해서 그 모욕적인 정도가 더 낮은 건 아니지만, 나는 항상 퀘벡의 욕을 들을 때마다 왜 성스러운 것이 욕이 되는지 정말 궁금했다.

 

1. 따바르낙 (Tabarnak)

 

퀘벡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욕이다. 기본적인 의미는 '화나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실수로 먹을 걸 떨어뜨리거나, 갑자기 잘 쓰던 펜이 안 나온다든가, 인터넷 연결이 끊긴다는지 할 때 쉽게 하는 욕이다.

 

 

이제야 겨우 금요일이네, 따바르낙!

'따바르낙(Tabarnak)!' 만 쓰면 '아 짜증나!' 정도이고,

'따바르낙 드 로디나떠(Tabarnak de l'ordinateur)!' 하면 '이 망할 컴퓨터!' 정도의 의미가 된다.

 

참, 따바르낙에 한해서는 좋은 의미도 있다. 누군가 복권에 당첨됐다거나 승진, 혹은 깜짝 놀랄 만한 대단한 일을 했다면 따바르낙!하고 놀라움을 표현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 톤이 좀 더 부드럽고 웃는 얼굴로 말하기 때문에 헷갈릴 일은 없다.

 

카톨릭 제단

 

이 따바르낙이라는 말은 가톨릭 종교의 제단(따바르나클)에서 유래했다.

정말 이게 욕이라고? 야! 이 카톨릭 제단아!

 

어떤 사람들은 따바르낙을 살짝 바꿔 따바웻!이라고도 한다.

 

2. 깔리스 (Câlisse)

 

이 욕을 직접 말할 때는 a에 악센트가 붙어서 깔리스보다는 '꺼얼리스'처럼 껄렁껄렁하게 발음해야 그 맛이 산다. 개인적으로 이 욕의 어감이 정말 웃기기 때문에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따바르낙과 마찬가지로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만 이 단어를 동사로 써서 '깔리스하다'라고 말하면 '신경 안쓴다'라는 의미가 된다. 욕 자체의 수위는 따바르낙과 별 차이가 없다. 

 

Elle est crissement méchante, c’est une câlisse.
(그 여자는 진짜 못됐어, 정말 꺼얼리스야.)
Je vais câlisser ma feuille sur la table pis je vais m’en aller.
(이 종이에 뭐라고 쓰여있든 신경 안쓴다, 난 몰라.)

 

카톨릭 성배

깔리스의 뜻도 매우 종교적인 카톨릭 성배를 의미한다. 이렇게 예쁜 잔이 욕이라니... 

 

3. 에스티, 오스티 (Estie, Ostie)

 

의미와 수위는 따바르낙, 깔리스와 같다. 이 단어는 가톨릭에서 먹는 빵을 의미한다.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하얀 빵, 즉 성체를 에스티라고 한다. 아무튼 카톨릭에서 하는 건 퀘벡 사람들한텐 다 욕이다.

 

4. 크리스 (Crisse)

 

'그리스도'에서 유래한 크리스라는 단어도 또한 욕이다.

 

5. 사크레멍 (Sacrement)

 

사크레멍 자체가 '성스럽게', '성스러운'이란 단어이다. 한겨울에 영하 35도 정도는 쉽게 찍는 퀘벡에서는 "이런 성스럽게 추운 날씨!" 같은 욕을 쓴다. 

 

뜻이 비슷한 만큼 욕의 수위도 비슷한데, 더 세게 욕하고 싶다면 상술한 욕들을 잘 조합하면 된다.

Crisse de tabarnak de câlisse, quand est-ce que vous allez me laisser tranquille, ostie?
(크리스 드 따바르낙 드 깔리스, 제발 날 좀 내버려 둘래, 오스티?)

 

누군가 이렇게 욕을 찰지게 다 조합해서 말한다면 아무래도 피하는 게 좋다. 보통 화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 문장에 싸크가 네 개 정도 들어갔다면 곧 고함치면서 삿대질하거나 누구 한 대 치기 일보 직전인 상태이다. 

 

퀘벡 사람들은 싸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회사에서나 업무 상황에서는 거의 쓰지 않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굉장히 자주 쓴다. 내가 여기에 인용한 예문도 퀘벡 정부에서 인정한 프랑스어 교재(Par ici)에서 발췌한 것이다.

 

 프랑스에게 버림받은 퀘벡

 

퀘벡 본토 출신인 쟝마크 선생님 덕에 나는 드디어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17, 18세기 캐나다 동부의 대부분이 프랑스 차지였다. 캐나다가 뉴 프랑스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프랑스인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했고 비버 모피산업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비버는 캐나다의 상징이다.

 

아무튼 영국이 미 대륙을 차지하면서 뉴 프랑스(캐나다)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큰 전쟁을 벌였다. 그래서 도깨비 촬영지인 퀘벡 시티에는 그 전쟁의 흔적인 성곽과 대포가 남아있다. 프랑스는 이 전쟁에서 크게 졌고, 결국엔 퀘벡 지역으로 땅이 축소되고 프랑스 본토는 이 식민지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국이 미 대륙에 계속해서 군인을 보내고, 개척민들을 보내 미국과 캐나다를 발전시킨 것과 달리 프랑스는 퀘벡을 져버렸다. 프랑스 사람들은 식민지에 투자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프랑스인은 역사도 없고, 문학도 없다.(« sans histoire et sans littérature»)며 비웃기에 이르렀다. 

 

 구대륙 프랑스와 신대륙 퀘벡의 갈등

 

이때부터 퀘벡과 프랑스 본토의 애증관계가 잘 보인다. 퀘벡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과 선조가 같고 문화가 비슷하니 그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배신감이 심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프랑스에 무시받고, 그 이후에는 부유한 영국계 캐나다인들에게도 무시를 당했다. 오죽하면 퀘벡 주 자동차 번호판에는 항상 "나는 기억한다(Je me souviens)"이라는 글이 쓰여 있을 정도여서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퀘벡 사람들이 비교적 가난하고 역사도 짧고 문화도 보잘것없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모욕감을 느낀 퀘벡 사람들은 문화를 발전시키자는 조용한 혁명(Révolution tranquille)을 시작하면서 구대륙의 구시대적 종교인 가톨릭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들이 가톨릭 교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퀘벡의 전후 세대만 해도 가톨릭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이혼과 낙태를 금지하는 율법 때문에 아이들을 열넷이나 줄줄이 낳았다. 쟝마크 선생님의 부모님이 이 가톨릭 학교를 나왔는데 기본적인 단어인 사랑하다(aimer)의 스펠링을 쓸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신체적 체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성스러운 놈아! 라고 말하는 건 '아직도 가톨릭을 믿는 호구 같은 무식한 놈!'이라는 뜻을 내포하기도 한다. 이런 카톨릭 배척 덕분인지 조용한 혁명 이후로 카톨릭 교회와 카톨릭 학교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대부분의 퀘벡 사람들은 종교가 없다. 게다가 카톨릭이 아닌 다른 문화의 종교는 더욱더 쉽게 인정해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잊혀진 역사

 

하지만 퀘벡의 젊은 세대는 이런 역사를 다 잊었으며, 퀘벡의 욕에 담긴 카톨릭 배척의 의미도 모두 사라졌다. 올해 초에 퀘벡 역사 수업을 들을 때에도 수업 진행자에게 이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퀘벡 사람들은 카톨릭 용어를 욕으로 쓰던데, 카톨릭이 싫어서 그런 건가요?"

"글쎄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나는 기억한다 - 정말?

젊은 세대가 실제로 이런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퀘벡 주는 자동차 번호판에 "나는 기억한다(Je me souvines)"라고 쓰도록 만들고, 외국인에게까지 돈을 주며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정말 이 역사가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퀘벡의 유명한 노래에는 어른들의 잔소리같은 이런 구절이 있다.

 

Ton arrière-arrière-grand-père, il a défriché la terre
Ton arrière-grand-père, il a labouré la terre
Et pis ton grand-père a rentabilisé la terre
Pis ton père, il l'a vendue pour devenir fonctionnaire

Et pis toi, mon p'tit gars, tu l'sais pus c'que tu vas faire

 

너희 고조할아버지는 땅을 팠고

너희 증조할아버지도 밭을 일구며 일했다

너희 할아버지가 이 땅을 먹고 살기 좋게 만들었는데

너희 아버지는 공무원이 되려고 그 땅을 팔았다

그리고 너는 네가 뭘 할지 모르는구나

 

Ton arrière-arrière-grand-mère, elle a eu quatorze enfants

Ton arrière-grand-mère en a eu quasiment autant

Et pis ta grand-mère en a eu trois c'tait sufsant

Pis ta mère en voulait pas ; toi t'étais un accident

Et pis toi, ma p'tite fille, tu changes de partenaire tout l'temps

 

네 고조할머니는 14명의 아이들을 낳았고

네 증조할머니도 그쯤 낳았지

너희 할머니는 셋이면 충분했고

너희 어머니는 널 원치 않았지. 넌 사고로 낳은 아이야.

그리고 너는 매번 파트너를 바꾸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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