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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바쁜 것도 전염이 되나?

by 밀리멜리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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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참 이상한 날이었다. 

출근하러 집밖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파트 관리인 산드로를 만났다. 예전에 산드로하고 이야기할 때는 영어로 이야기했는데, 요즘은 프랑스어로 이야기한다.

"봉주 산드로! 잘 있었어?"
"오, 소영! 잘 지내지, 그럼..."

하는데 산드로의 눈가가 뭔가 촉촉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라서 잘 지내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괜찮아?"
"사실 아래층 아파트에서 불이 났어. 그래서..."
"불이 났다고? 난 하나도 몰랐는데!"
"그럴 거야. 다행히 불이 크지 않아서 번지진 않았어. 그치만 스프링쿨러가 작동해서 층 전체가 물바다가 되어버렸어. 벽이랑 바닥을 모두 다 뜯어내야 해..."
"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아, 힘내! 너무 힘들겠다."
"다행히 외부 회사가 와서 공사를 할 테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게 많네. 위로해줘서 고마워. 친절하다. 얼른 출근하러 가 봐!"
"응, 이야기 더 듣고 싶지만 가야겠네. 나중에 봐!"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는데, 우편물과 장비를 배달하는 루이를 만났다. 루이는 최근에 재혼했는데, 명절때마다 새 가족과  새로 생긴 아기들 사진을 자주 보여준다.

루이는 퀘벡 토박이여서 말이 빠르고 내가 못 알아듣는 발음이 많다. 그래도 요즘은 어떻게든 눈치로 말을 알아듣는다.

"루이, 요즘 어때?"
"오늘은 좀 피곤하네. 다른 층 담당하는 동료가 열이 나서 쉬었거든. 그거 커버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어. 내가 담당하는 이쪽 사무실은 괜찮지만, 다른 층엔 응급실하고 수술실이 있단 말이지. 거기 가져다주는 장비는 모두 소독해야 해서 정말 피곤하다."
"정말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네... 힘내! 곧 주말이니까."
"맞아, 주말만 보고 산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나디아와 함께 산책하면서 나디아도 똑같이 일이 많아 힘든 걸 발견했다.

"왜 그 사람은 내가 보낸 스케줄을 확인 안할까? 아아, 간호사들은 나한테 스케줄 언제 나오냐고 재촉하고, 나는 하나하나 다 고쳐야 하고. 그리고 확인도 받아야 하고. 그치만 괜찮아, 괜찮아. 너랑 이야기하니까 좀 풀린다."

나디아는 알제리 출신이라 프랑스어가 듣기 쉽다. 오늘은 정말 바빴는지 공원 한바퀴를 도는 내내 불만을 토로했다. 들어보니 나디아가 하는 일이 항상 시간제한이 있어서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다. 

"지금 공고 기간인데, 역시 일을 바꾸고 싶어. 그치만 시간이 없어서 어떤 공고가 떴는지 살펴보지도 못했어, 아!"

나디아의 말을 들어주면서, 나디아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무지 심심할 것 같다. 


나도 그럭저럭 바쁘지만 할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후가 되고 무지하게 바빠졌다. 갑자기 오후에 장관급 회의가 급하게 잡혀서 프레젠테이션을 2~3개 만들고, 문서를 여러 개 만들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지나고 나니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 내내 야근을 했다. 1시간, 혹은 30분이지만.

바쁜 것도 전염이 되나? 그런 생각이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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