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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다람쥐와 이런 인생

by 밀리멜리 202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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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정말 춥다! 체감온도 영하 11도라니.
 
주머니에 땅콩 몇 개 집어넣고 점심산책을 나왔다. 공원 다람쥐에게 몇몇 개 던져줘야지.

 
공원을 걸으면서 땅콩을 하나씩 던지니 다람쥐들이 막 나를 따라온다. 히히 귀여워!
 
하지만 땅콩이 없어도 요즘은 다람쥐들이 날 알아보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산책이 끝나고 간호사인 아닉과 마주쳤다.
 
"오늘도 산책했어?"
"응, 오늘 엄청 춥더라. 다람쥐들한테 땅콩도 줬어."
"아하하하하! 다람쥐 너무 귀엽지. 아참, 내가 다람쥐 사진 보여줄게. 파트너 시골집에서 찍은 거야!"
 
까만 다람쥐가 주택 테라스까지 들어와서 뭔가를 막 먹는 사진이다.
 
예전에 아닉과 한번 산책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땅콩을 던져주니 다람쥐들이 따라오는 게 신기했나 보다. 아닉은 그때 이후로 나에게 막 다람쥐나 작은 동물 사진을 보여준다.
 
"왠지 모르겠지만, 다람쥐만 보면 너가 생각나!!"
 
하고 신나한다.
 
아닉은 성격이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시원시원한 퀘벡여자다. 퀘벡 사투리가 심해서 말할 땐 알아듣기가 힘들기도 하다. 빠르게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잘 못 알아들어서 고개만 끄덕끄덕하는 편인데...  그치만 아닉도 엄청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것 같다. 
 
"우리 딸이 오모포비(동성애 혐오자)인데, 있지."
 
잉? 갑작스럽게 들어온 말에 깜짝 놀랐다. 몬트리올은 특히 성정체성과 성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곳이라 이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응? 뭐라고?"
"오모포비. 게이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야. 이 단어 알아?"
"아, 응. 알아."
"게이 알지? 그애 아빠가 게이거든. 헤어진 지 오래지만."
"아... 그 둘이 관련 있는 거 아닐까?"
"뭐, 그럴 수도."
 
그러니까 아빠가 게이인데... 딸이 동성애혐오자가 되었다고.
 
이 두 마디 사이에 많은 것이 생략된 것 같은데. 정말 많은 일을 겪었겠구나... 충격적인 이야기인데 아닉은 그냥 밥먹으면서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말한다.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거.
 
그리고 막내딸이 입양가정으로 보내지게 되었다고 한다. 왜? 어떻게? 그런 건 감히 물을 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 그 소식을 듣고 많이 슬펐는데, 아닉은 어떻게든 충격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 같다. 화가 나고 슬플 테지만 티를 잘 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화가 나 보인다. 정말 이런 상황은 너무나 낯설어서 뭐라 위로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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