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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으며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는다

by 밀리멜리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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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 넘게 퇴근 후 프랑스어로 고등학교 과학공부를 하고 있다. 이제 5과목을 끝내고 마지막 권을 공부하는 중이다. 아, 조금만 더 하면 끝난다!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지만, 하루에 1시간씩 꾸준히 공부한 게 자랑스럽다. 그래서인지 공부하는 재미를 발견했다.

 

한국에서 주입식으로 배울 때는 알지 못했던 지식의 참맛이랄까? 나는 학생 때도 수업 듣는 와중에 공상에 자주 빠졌는데, 그러다 보면 수업을 놓쳐서 나중에 허겁지겁하기도 했다. 지금은 혼자서 공부하니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래서 뭐 새로운 걸 배운 건 아니지만, 아무튼 공상하는 자체가 재밌다. 

 

예전에 태풍과 고기압 발생원리를 배울 때도 공상에 빠져들었다. 공기입자가 압력 때문에 움직인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또, 원자가 사실상 텅 비었다는 사실을 배웠을 때, 지구상의 모든 원자핵과 전자를 빈 공간 없이 꽉꽉 담아 모으면 축구운동장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을 때도 너무 신기해서 공상에 빠졌다. 외우기만 할 때는 모르던 반가움이다.  

 

이번에도 한창 화학의 이온반응식을 공부하다가 또 공상에 빠졌다. 이온식은 이전에 배운 건데 어떻게 식을 푸는지 기억이 안 나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이온식 푸는 법을 검색했더니 제일 처음 나온 결과는 라부아지에의 질량보존법칙이다.

 

라부아지에의 질량보존법칙

Rien ne se perd, rien ne se crée, tout se transforme.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으며,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고, 모든 물질은 변화한다.]

 

오, 뭐야... 멋있다 이 말!

 

그런데 왜 이 말이 멋있는 걸 몰랐지? 한국어로 질량보존법칙을 검색해 보았다.

 

질량 보존 법칙(質量保存法則, law of conservation of mass)은 닫힌 계의 질량이 화학반응에 의한 상태 변화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고 계속 같은 값을 유지한다는 법칙이다. 물질은 갑자기 생기거나, 없어지지 않고 그 형태만 변하여 존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뭔 소리야 이게... 읽기가 넘 어려워서 기억이 안 났나 보다. 프랑스어로는 쉬운 문장을 한국어로  이렇게 어렵게 번역했는지 모를 일이다. 똑같은 말인데  어렵게 배울 일이야?

 

아무튼, 이온반응식은 의식 저편으로 멀리 사라지고, 라부아지에의  마디에 꽂혀버렸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어디였더라.

 

아, 반야심경이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고,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는다.

 

 

부처님은 역시 과학이다.

 

라부아지에가 근현대에 들어와서 발견한  이미 알고 경전으로 알려주시기까지 했다니. 

 

아무튼... 이온반응식 풀다가 반야심경을 다시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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